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등록 : 2016.08.23 13:40

[고은경의 반려배려] 개도 시원할 권리가 있다

등록 : 2016.08.23 13:40

마당에 묶어서 키우는 반려견을 위해서는 여름철 햇볕을 피해 쉴 수 있는 그늘을 마련해주고 충분한 물을 공급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방문한 경남 한 관광지 식당에서 1m도 안 되는 줄에 묶인 강아지가 풀이 죽은 채 엎드려 있는 것을 봤다.

폭염경보까지 내린 날이었지만 그늘막도 물그릇도 없었다. 옆에 개집이 있었지만 더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면만 뚫린 개집은 환기가 되지 않고 오히려 열기를 가둔다고 한다. 휴가지에 버려지는 반려견들이 평소보다 많이 늘어난다는데, 이 강아지는 그나마 집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겠구나 싶었지만 놀러 다니기는커녕 더운데 피할 곳도 없이 늘어져 있는 게 안쓰러웠다.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 23일은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아침, 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는 처서(處暑)라지만 그래도 아직은 덥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역대 최고치인 2,000명을 넘어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람뿐 아니라 올여름 폭염이 유난히 견디기 어려운 생명이 있다. 바로 사람보다 더위를 더 타는 동물들이다. 동물들은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서 열 배출이 쉽지 않아 더위에 더 취약하다고 한다. 동물원 속 동물들이 시원한 물로 목욕하고 얼음과자와 과일을 간식으로 먹는 장면은 여름철 TV 뉴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동물원 속 동물들의 여름 나기도 힘겹지만, 더위 속에 방치된 동물들은 더 많다. 우선 마당에 줄로 묶어서 키우는 반려견들이다. 마당에 묶어 키우는 개들은 더위에 지속해서 노출될 경우 열사병에 걸리기 쉽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에는 개를 마당에 묶어 놓는 것을 아예 금지하거나, 시간에 제한을 두는 규정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 이런 제도를 만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여름에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집에서 사는 개나 고양이도 더위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이 집을 비우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때 환기와 수분 공급이 필수다. 필자는 출근 전 반려견에게 조금이라도 더위를 식혀주기 위해 냉매재가 들어 있는 쿨매트를 깔아주고 쿨스카프를 입혀준다. 수년 전 몇만원 주고 샀는데 매년 여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21일 전북 완주군 한 육계농가에서 닭들의 움직임이 더위로 인해 둔화됐다. 뉴스1

더위를 타는 것은 반려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양식장 어류와 닭, 메추리, 오리, 돼지 등 가축도 더위와의 전쟁을 위해 초비상이다. 최근 한 달 동안 폭염으로 가축 350만 마리가 폐사했는데 최근 5년간 피해규모가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더위에 가장 취약한 것은 닭인데 깃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 열 배출이 쉽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면 체온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폭염으로 인한 폐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육장 주변에 그늘막을 설치해 농장으로 유입되는 공기의 온도를 낮추고 사육두수도 20% 줄여야 한다고 한다.

폭염 속에서 시민들은 전기세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도 맘대로 틀지 못한다며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전기사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용은 제외하고 가정용에만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시민에게도 최소한 더위를 피하고 제대로 잠잘 수 있는 권리를 달라, 내 집도 시원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사람도 시원할 권리가 있듯 마당에 묶은 개도, 집에 있는 개나 고양이도, 사육장에 있는 가축들도 시원할 권리가 있다. 특히 동물들의 더위를 피하게 해주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올여름, 사람도 동물도 무사히 더위를 이겨내기를.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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