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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답지 않은 일본 정치인들

입력
2014.07.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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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답지 못하다’라는 의미의 일본어로 ‘메메시이(女女しい)’라는 단어가 있다. 언어학자들은 계집녀(女)를 두 개씩이나 겹쳐 쓴, 성차별적인 요소가 다분한 이 단어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팽배한 일본 사회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 정치권이 최근 두 종류의 사내답지 못한 사건에 휘말렸다.

전자는 노노무라 류타로 효고현 의원이 출장비 유용 의혹 해명 기자회견에서 대성통곡한 사건이다.

노노무라는 지난 한해 동안 인근 기노사키온천역 등을 195회나 당일치기 출장을 다녀오면서 300만엔 가량의 정무활동비로 받아 썼으나 영수증 제출을 하지 않아 유용 의혹에 휘말렸다.

노노무라는 이달 초 의혹 해명 차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서 집요한 추궁에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내가 어떻게 힘들게 의원이 된 줄 아느냐” “정력적인 활동을 매도한다”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노노무라의 격앙에 찬 기자회견 동영상은 일부 네티즌이 피아노와 기타로 화음을 곁들여진 다양한 버전을 제작, 유튜브 사이트에 올렸다.

정치인이 공개 석상에서 울음을 터뜨린 동영상이 수백만건의 조회건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화제거리로 떠오르자 일본 사회는 사내답지 못한 정치인 한명 때문에 일본이 전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다며 노노무라 성토에 나섰다. 일부 언론은 노노무라가 중학생 시절부터 화를 잘 냈다고 폭로하는 등 신상 털기에 가담했다.

연일 이어지는 노노무라 때리기에 지역의회 중진들은 노노무라에게 자진해서 의원직을 내놓지 않으면 출장비 내역을 둘러싼 의혹 해명을 위한 고발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노노무라는 11일 의원직 사퇴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반면 도쿄도 의회와 중의원 남성 의원들은 여성 의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일삼아 여성 비하 의식이 팽배한 일본 정치권의 치부가 드러내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여성 시오무라 아야카 도쿄도 의원은 지난 달 임신과 출산에 대한 도쿄도의 지원 정책을 묻는 질의도중 “너나 빨리 결혼해라” “애를 못 낳는 거냐” 등의 남성 의원들의 막말세례를 받았다. 일본 최고 의결기관인 중의원에서도 4월 남성 의원들이 30대 초반의 여성 우에니시 사유리 중의원에게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야유를 내뱉었다.

성희롱에 다름없는 거친 발언이 의회내에서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일본 사회는 한동안 술렁거렸으나 파문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당시 야유를 퍼부은 것으로 밝혀진 일부 남성 의원이 해당 의원에게 사죄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적지 않은 의원들이 당시 막말을 한 동영상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막말 대열에 가담한 의원이 추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들 의원 대다수가 자민당 소속이라는 정도가 추가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노노무라 사건 당시 신상 털기에 바쁜 일본 언론도 이번 일을 둘러싸고 ‘사내답지 못한 언행을 일삼은’ 의원들을 가려내는 데는 적극적이지 않다. 일본인 지인은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는 의원이 너무 많아 사내답지 못한 울보 의원에 비해 기사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다.

아베 신조 총리가 13일 여성을 일본의 성장 전략의 중요한 기둥으로 규정하고 올 9월 세계여성리더를 초청, 국제 심포지엄을 열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이끄는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의 여성 비하 막말 퍼레이드가 지속되는 마당에 열리는 심포지엄이 어떻게 진행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번 심포지엄이 일본 정치인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전환을 가져다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사가 될 것이다. 향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치권의 눈높이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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