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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님~" 순례길엔 개망초 꽃들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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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님~" 순례길엔 개망초 꽃들 방긋

입력
2014.07.0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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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교황 맞는 '순교의 땅' 충남 내포지역

합덕성당에서 합덕방죽으로 이어지는 버그네순례길 양편으로 개망초 꽃이 지천으로 피어 상큼한 향기를 피우고 있다. 7월 말이면 합덕제에 가득한 연꽃향기가,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순례길을 걷는 길손을 반길 것이다.
합덕성당에서 합덕방죽으로 이어지는 버그네순례길 양편으로 개망초 꽃이 지천으로 피어 상큼한 향기를 피우고 있다. 7월 말이면 합덕제에 가득한 연꽃향기가,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순례길을 걷는 길손을 반길 것이다.

“1836년 겨울, 16세 소년 3명이 솜옷을 입고 압록강이 얼기를 기다려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6개월에 거쳐 1만 2,700리 길을 걸어 드디어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당시 이들을 맞이한 프랑스신부는 이렇게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본 적이 없다고 회고합니다. 엄마도 보고 싶고 고향도 그립고, 열여섯 살 이 어린 소년들이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당진시청 문화관광해설사 이영화씨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이씨가 말하는 3명의 소년은 김대건과 최양업 그리고 그의 사촌 최방제다.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신학수업을 마친 김대건은 조선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하지만 당국의 탄압으로 다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1844년 8월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 탄생이었다. 그 해 10월 충청도 내포지역으로 입국한 김대건은 선교활동을 벌이다 1846년 체포돼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역사책에 나오는‘큰 어른’으로 생각해온 그가 불과 26세의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솔뫼성지는 바로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다.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남 내포지역을 두 차례 방문한다. 15일은 당진의 솔뫼성지를, 17일은 서산의 해미읍성을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다. 주 목적은 천주교의‘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것이지만 한국천주교회역사에서 이 지역의 중요성을 그만큼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황 방문이 예정된 내포지역을 미리 다녀왔다.

충청도 양반의 넉넉한 여유가 배어있는 내포 땅

최근 이전한 충남도청 소재지가 내포신도시로 불리면서 범위가 축소된 면이 있지만 내포는 말 그대로 서해안 물길이 내륙 깊숙이 이어져 포구를 형성한 넓은 지역이다. 아산 당진 서산 예산 홍성 일대를 아우른다. 서해 물길을 따라 외래 문화가 가장 먼저 전파되었고,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다. 나무망치로 굵은 흙덩이를 잘게 부순 듯,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진 내포의 지형을 보면 ‘충청도 양반’이라는 표현에는 무엇이라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함과 여유가 반영돼 있음이 틀림없다. 백제 시대 불교나 조선 말기 천주교의 전래도 같은 맥락이다.

솔뫼성지는 내포지역의 천주교 성지를 잇는 버그네순례길의 출발점이다. 버그네도 ‘작은 내’라는 뜻이라니 서해를 통해 전해진 천주교가 실핏줄처럼 연결된 내포를 따라 고을마다 퍼져나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솔뫼성지는 2011년 성역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15m 높이의 목조 예수상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인근 주민들도 잘 모르던 곳이었다. 뫼 산(山)자를 형상화한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야외공연장인 솔뫼아레나가 자리잡고 있다. 아레나는 모래라는 뜻으로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200년 전만해도 이곳이 바닷가였음을 전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1만여 평의 얕은 언덕에 잘 가꾸어진 수령 200~300년생 소나무숲은 사제의 몸가짐처럼 기품이 있다. 그래서 솔뫼(松山)다.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정문 오른편 기념성당은 김대건 신부와 밀사들이 조선에 재입국할 때 탔던 라파엘호를 본 따 지었다. 강경 황산포의 거친 물결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서해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져 방향을 잃고도 신앙의 힘으로 망망대해를 헤쳐나간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신리성지의 다블뤼주교 기념관.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통해 보이는 예당평야와 마을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신리성지의 다블뤼주교 기념관.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통해 보이는 예당평야와 마을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 입구는 산(山)자를 본 따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 입구는 산(山)자를 본 따 만들었다.

개망초 향 짙은 합덕방죽 버그네순례길

버그네순례길의 다음 코스는 합덕성당. 1929년 준공돼 충청남도 기념물 제 145호로 지정될 만큼 오래된 성당이다. 변형된 고딕양식으로 낮은 언덕 위에 두 개의 종탑이 돋보인다. 특히 유스호스텔이 있는 뒷마당에서 보는 성당 모습이 이국적이다. 이곳 순교비는 묏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식 비석이다. “합덕 사람이 세웠으니 당연히 이런 모습이죠” 해설사의 대답이 오히려 태연하다. 제사 문제가 박해의 표면적인 이유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의외의 모습이다.

성당 앞에서 합덕제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지금 개망초가 지천이다. 장맛비라도 퍼부을 것 같은 비릿한 한여름의 공기를 가르는 바람에 상큼한 개망초꽃 향기가 짙게 배어있다. 밭갈이가 끝나면 가장 먼저 올라와 농부들에겐 ‘이 망할 놈의 풀’로 통하는 망초, 그보다도 한 수 아래로 취급 받는 개망초 향기가 이렇게 달콤했던가 싶을 정도다.

개망초가 만발한 길은 합덕제 방죽으로 이어진다. ‘합덕방죽에 줄 남생이 늘어 앉듯’이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예전에는 낚시꾼들이 몰리던 유명한 저수지지만 지금은 쪼그라들어 둘레가 1.7km에 불과하다. 7월 말 한여름이면 연못을 가득 피어 오르는 연꽃 향이 또 길손을 반길 것이다.

순례길은 합덕방죽에서 성동산성을 거쳐 신리성지에서 끝난다. 신리성지는 조선 5대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으로 조선의 카타콤바(로마 기독교인들의 지하무덤이자 피난처)로 불린다. 신리는 삽교천 물길을 따라 중국의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돼 있었고,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다. 최근에 완공된 다블뤼 주교 기념관은 로마시대 지하교회를 상징적으로 본 땄다. 천주교 박해 그림이 걸린 지하 전시장은 마감공사를 하지 않은 듯 시멘트 벽돌이 그대로이고, 그림을 비추는 것 외에는 일체의 조명이 없어 어둠 속에서도 신앙을 이어나간 당시 교인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현대식 건물 1층 한 칸은 바람에 자리를 내줬다. 한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초록바람이 통째로 불어온다. 진한 녹색으로 변해가는 예당평야의 반듯한 논과 멀리 보이는 마을이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다. 가을 추수철이면 밀레의 ‘만종’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김제평야에서나 볼 수 있다는 지평선이 이곳에도 있지 않을까? 그 날은 옅은 안개로 끝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보이는 그곳을 지평선이라 여기고 해질녘까지 기다리지 못한 조바심이 못내 아쉽다.

버그네순례길은 약13km, 구도자의 마음과 종교적 신념이라면 순교자의 자취를 따라 기꺼이 걸을 수 있겠지만 그늘이 별로 없어 한여름 뙤약볕을 감내해야 한다. 여행은 고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합덕성당에서 출발해 합덕방죽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진·서산·아산=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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