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원일 기자

등록 : 2017.08.29 04:40
수정 : 2017.08.29 15:13

[잊혀진 살인마, 석면의 공습] 최대 피해자는 ‘도시의 약자’ 건설 일용직

(하)약자에게 더 가혹한 석면

등록 : 2017.08.29 04:40
수정 : 2017.08.29 15:13

건설ㆍ철거 관련 일용직 309명

현장 매일 바뀌어 노출 장소 몰라

결속력 없어 광산 피해보다 덜 부각

석면암 사망 서울 등 대도시 집중

건축 자재 철거 과정서 다량 노출

재건축 현장 피해 역학 조사 절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황선일(61)씨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석면과의 첫 접촉은 20세 전후 서울ㆍ경기 지역 공사장 일대였다.

2009년 8월부터 극심한 옆구리 통증과 함께 자주 숨이 차 병원을 찾게 된 황씨는 악성중피종(석면암) 진단을 받고 폐와 간, 횡경막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가까스로 종양은 제거됐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환경부는 ‘종양이 재발하지 않았으므로 완치됐다‘는 이유로 지난해 지원금을 중단했다. 황씨는 “40년이나 지났는데 그 때 일당 받던 공사 업체를 어떻게 찾겠나. 노무사와도 상의했지만 쉽지 않다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과거 광산과 공장 일대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던 석면 파동이 잠잠해 지는 동안에도 이미 유통된 석면은 끊임없이 시민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생명을 위협하고, 또 앗아갔다. 그 최대 피해자는 도시의 ‘대표적인 약자’, 건설 일용직 노동자다.

28일 본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월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후 지난 6월까지 정부가 공식 인정해 구제 대상에 포함된 석면 피해자 2,554명 가운데 건설ㆍ철거 관련 업종 종사자가 558명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그 동안 석면 최대 피해지역으로 지목됐던 석면광산 등 근무 경력자는 407명이었으며 석면 가공이 주 업무인 공장의 근무 경력자는 182명에 그쳤다.

본보가 분석한 자료는 환경부가 피해자의 석면 접촉경로 파악 등을 위해 최근 6년 반 동안 피해자와 유족이 구제급여를 신청할 당시 작성하도록 한 석면피해인정신청서의 직업이력 항목에 기재된 내용 전체다. 특히 건설ㆍ철거 관련 업종 종사자 가운데 무려 309명이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했었다고 기재했다.

이들이 그 동안 광산ㆍ공장 근무 피해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과거 원진레이온에서 유해물질 중독 피해를 입었던 노동자들은 조직적으로 항의해 정부도 늦게나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며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은 결속력을 갖기 어려워 목소리를 모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법인 소망의 유건혁 노무사도 “직업소개소나 인력사무소를 통한 일용직들은 현장이 매일 같이 바뀌기 십상이라 사고 발생 후 근무했던 장소도 정확히 기억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특히 긴 잠복기를 거쳐 본인이 석면질환에 걸린 사실을 안다 해도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라 현장의 전반적인 문제로 인식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제신청자 가운데 자신이나 사망한 가족의 석면 노출 이력을 전혀 기록하지 못한 이들도 621명이었다. 이 역시 정보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3년 건강검진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돼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은 유모(61)씨는 “의사에게서 피해구제 제도에 대해 듣긴 했지만 도대체 언제 석면에 노출이 됐는지는 전혀 짚이는 데가 없어 작성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석면 피해자의 지역적 분포 역시 기존 상식을 뒤엎는다. 각종 질환을 모두 합한 전체 피해자 숫자는 충남 954명, 경기 389명, 서울 353명, 부산 302명 순으로 여전히 광산이 많은 충남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악성중피종 환자는 경기 192명, 서울 190명, 부산 64명, 충남 61명 순이다. 서울, 경기 등 대도시가 석면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서울ㆍ경기 지역의 피해자 수치는 건축 자재 등으로 가장 많은 석면 제품을 사용했고 이후 철거 등을 거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 피해자 숫자가 충남 등지가 더 많은 것은 정부의 조사가 그쪽에만 집중된 데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역학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정밀 조사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용진 천안순천향대학교 석면환경보건센터장은 “피해자 사망 후 서울이나 경기에 살고 있는 유족들이 신청하거나 충남에 거주하다 도시로 이주한 경우, 대형 병원이 많은 지역으로 몰렸을 가능성 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며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정밀 조사가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도시 등 재건축 현장 피해 조사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은 "석면함유제품을 사용한 건축물 밀집지역 거주자나 작업자에 대해서도 환경부 장관과 지자체장이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석면피해구제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며, "석면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건강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w@hankookilb.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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