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신혼부부 해발 5943m 인근 고립
수십미터 벼랑 틈바구니에 숨구멍
"겨우 살아남아" 가족에 문자메시지
구글 고위 임원 프로젝트 수행 참변
네팔 대지진의 영향으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에 대규모 눈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생존자들이 순간적으로 생사가 갈렸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해줬다. 거센 눈보라에 휩쓸려 순식간에 실종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몇몇은 수십미터 높이의 벼랑 틈바구니에서 숨구멍을 뚫어가며 버티고 있다는 문자를 가족에게 보냈다.
26일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인 신혼부부 앨릭스 슈 나이더와 샘 샤패트는 현재 캠프1(해발 5,943m) 인근에 고립돼 있다. 지난 15일 결혼기념으로 세계 최고산에 도전해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등반에 나선 이들 부부는 25일 블로그를 통해 “오늘 엄청난 산사태가 일어나 커다란 바위 뒤에 은신처를 만들고 거대한 눈 벽에 구멍을 뚫어 숨을 쉬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셰르파(현지 등산 안내자)가 텐트 바깥에서 어서 나오라고 소리친 덕분에 눈보라가 몰아 닥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며 “엄청난 눈보라가 덮치기 직전 등산용 얼음도끼를 땅에 박은 뒤 매달려 겨우 살아 남았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의 가족은 26일 텔레그래프에 “이들에게서 ‘우리는 무사하지만 아직 캠프 1에 있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눈사태 발생 당시 베이스캠프(해발 5,334m)에 있던 전문 산악인 존 케드로스키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바람에 휩쓸린 등산 장비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 부상을 입혔고, 눈사태에 수백미터 밖으로 튕겨져 나간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텐트와 뒤엉킨 채 바람에 휩쓸려 날아다녔다”며 “이들이 바위나 빙하에 세게 부딪히기도 했다”고 참혹했던 순간을 묘사했다. 역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던 미국인 애쉴레 스텀러는 26일 CNN을 통해 “지진이 일어난 지점으로부터 도보로 4시간 거리쯤 떨어진 곳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꼈다”며 “고산증인 줄 알았지만 동행하던 셰르파가 ‘고산증이 아니라 다른 일이 일어난 듯 하다’고 말했을 때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던 한 영국 여성의 음성 메시지를 받은 여동생은 “언니가 메시지에서 트레킹을 하려고 카트만두의 랑탕 마을을 떠났는데 두 시간 후 그 마을이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했다”며 “산에서 굴러 내려 온 바위가 길을 막아 다섯, 여섯 시간을 걸어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한 이들 가운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구글 고위 임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구글은 자사의 비밀프로젝트 연구소 ‘구글X’의 댄 프레디버그 개인정보부문 대표이사가 직원 두 명과 구글의 ‘스트리트 뷰’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사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프레디버그 대표와 함께한 직원 두 명은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즐겨 이용하던 그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에베레스트 여행기를 수차례 올렸으나 22일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지진이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에베레스트 등반 성수기와 겹쳐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색ㆍ구조 작업을 담당하는 인도 당국은 26일 “전날 눈사태로 베이스캠프에서만 19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명이 실종됐다”며 “기상 상태가 나아진 26일 오전 구조 헬기를 띄워 오후까지 61명을 구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진 발생 당시 베이스캠프에 1,500명이 묵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거센 눈폭풍으로 접근할 수 없는 캠프1~4의 상황을 더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인도 당국은 덧붙였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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