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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이례적인 KT&G 경영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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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이례적인 KT&G 경영 개입

입력
2018.02.19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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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銀 “KT&G 사장 반대” 정부 입김 작용?

지분 6.93% 보유 “의결권 행사”

주주총회서 반대표 행사 전망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보조 맞춰

“정부의 CEO 물갈이 의중” 분석

KT&G의 2대 주주인 IBK기업은행이 백복인 사장의 연임에 반대하면서 이 회사 경영에 적극 개입하고 나섰다.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명분이지만, 국책은행의 이례적 행보를 두고 민영화된 옛 공기업의 인사에 관여하려는 정부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송업교 KT&G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위원장을 만나 백 사장의 연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KT&G 사추위는 지난 5일 백 사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이를 확정했다. 주주총회만 통과하면 백 사장이 연임에 성공하는 상황에서 기업은행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백 사장이 후보에서 사퇴하는 등의 상황 변화가 없을 경우 기업은행은 다음달 중순쯤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KT&G 사추위 측은 “내부 규정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 절차에 문제가 없다”며 백 사장 연임 절차를 그대로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의 KT&G 경영참여. 신동준 기자
기업은행의 KT&G 경영참여. 신동준 기자

기업은행은 KT&G 전체 지분 중 6.93%를 보유, 단일주주로는 국민연금(9.09%)에 이어 두 번째로 지분이 많다. 외국인이 전체 지분의 절반 이상(53.27%)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경영 참여에 관심이 없는 단순투자자로 구성돼 있다. 주총의 향방을 국민연금과 기업은행이 결정 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번 KT&G 사장 선임을 앞두고 기업은행은 이달 초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 공시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했다.

기업은행이 내세우는 경영 참여 이유는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와 사장 후보 선출 과정의 불공정성이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 인수 후 이중장부를 동원한 분식회계와 자산 과다계상, 베트남 수출선 무상양도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해외 신사업을 주도했던 백 사장은 전(前) 임직원들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금융감독원도 해당 의혹에 대한 감리를 진행 중이다.

사장 선임 절차도 논란거리다. KT&G는 지난달 31일 사장 공모 공고를 낸 뒤 단 이틀 동안 서류를 접수했고, 이후에도 서류 심사와 면접을 각각 하루 만에 끝냈다. 나흘 만에 속전속결로 후보 공모 절차를 마친 셈이다. 지원 자격도 전ㆍ현직 전무 이상으로 한정했다. 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CEO가 검찰 고발에 금감원 감리까지 받는 상황이므로 자칫 경영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사장 후보 선정 방법과 절차 또한 상식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주주제안으로 이사회 내 사외이사(현 6명)를 2명 더 확대하는 안과 오철호 숭실대 교수와 황덕희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안도 냈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그 내용이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지 않는 한 주총 안건으로 무조건 올라가도록 규정돼 있다. 두 안이 모두 주총을 통과한다면 기업은행은 추천 후보 2명을 전부 사외이사에 앉히는 성과까지 기대할 수 있고, 안 되더라도 다음달 주총 때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한 명의 후임 자리를 노려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최대주주(지분율 51.8%)인 기업은행이 백 사장 연임에 반대하고 나선 이상,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민연금 또한 보조를 맞출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백 사장 연임에 대해 ‘적절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기업은행은 외환위기 당시 정부로부터 KT&G 주식을 현물출자 받은 이후 한 번도 경영 참여에 나선 적이 없다. 특히 KT&G는 2002년 민영화 이후 줄곧 내부 출신이 CEO를 도맡아 왔을 만큼 ‘외풍’에서 자유로웠다. 기업은행의 돌연한 경영 참여 선언을 두고, 정부가 국책은행을 통해 ‘우회 관치’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과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강화하려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내달 KT&G 주총에서 백 사장이 연임에 실패할 경우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기업의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유력 주주 없이 지분이 분산된 기업들, 특히 정부의 입김이 여전한 민영화된 공기업과 금융사의 CEO를 정부가 간접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주주로서 회사 주가에 악영향을 주는 점들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부가 다른 의도를 갖고 국책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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