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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미안해, 나는 너보다 귀하지 않아"

입력
2018.06.01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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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주니어 제공
시공주니어 제공

한 재벌가가 벌여 온 갑질의 역사를 보면 여느 막장 드라마 못지 않다. 분노가 그치지 않는 것은 대다수 국민도 이 사회에서 심정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가해자 본인들의 공감지수는 얼마나 될까? 기업의 경영을 맡아온 재벌 2세가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모습은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얼마간 수치스러운 치욕을 당한다 한들, 정작 ‘을’들의 울분에 찬 외침이 저 특별하신 분들의 심장에 닿을 리가 만무하다.

재벌 2세들의 특권 의식과 갑질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진 권력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성별, 인종, 국적,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한 평생의 굴레가 되기도 한다. 하물며 갑을병정… 그 순서에조차 끼지 못하는 야만과 비이성의 벌판에는 인간 외의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다. 그들에겐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나 문자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지배 계급들이 하층민들을 착취하고 학대해도 처벌받지 않았던 것처럼, 동물들도 인간의 자비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콰앙!” 길가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넘어진 아이 곁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아이의 엄마가 혼비백산한 채로 뛰어오고, 곧이어 구급차와 경찰차도 출동한다. 다행히 아이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아 보인다. 다친 아이를 싣고 구급차가 떠나면서 모여 있던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자리를 뜬다.

콰앙!

조원희 지음

시공주니어 발행∙48쪽∙1만1,500원

“콰앙!” 건너편에서 또다시 충격음이 들린다. 사람들이 놀라 모여든다. 하지만 이번엔 사람이 아니다. 아기 고양이가 쓰러져 있다.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시선을 돌려 제 갈 길을 바삐 가버린다. 아무도 고양이의 부상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 아이만이 구급차가 왜 오지 않느냐고 엄마에게 묻지만, 엄마도 아이 손을 이끌며 가던 길을 재촉한다. 날이 저물어서야 아기 고양이를 향해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온다. 어미 고양이일까? 다친 어린 고양이를 물고 큰 트럭들이 달리는 위험한 도로 위를 걸어가는 어미 고양이가 너무도 위태로워 보인다.

우리는 모두 평등한 인간이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라고 배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나라, 내 고향, 내 출신학교, 내 직장, 내 가족… 끊임없이 경계를 나누며 공감지수를 높여가는 것이 사람들의 평범한 인식이다. 평등 의식은 결코 종교나 사상, 교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자연계 약육강식처럼 야성을 거스르는 인간의 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래서 인간에게만 있는 특별하고 숭고한 면이기도 하다.

법질서에서 처벌받지 않는 것은 곧 범죄가 아니다. 소유주조차 동물들을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까지 방치한다고 해도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코 동물이 될 수 없는 인간이나 절대 ‘을’의 입장에 처할 수 없는 재벌 2세나 다를 게 무얼까. 인간이 동물보다 존귀하다는 생각도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의 오만한 특권 의식 아닐까.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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