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의원 부활 불쏘시개 역할도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 4인용 갈색 천막 33개 동이 들어선 농성장은 자칭 ‘애국 시민의 전쟁사령부’다. 천막에는 ‘광화문 세월호 불법 텐트 철거하라’, ‘마녀사냥 탄핵 무효 법치주의 지켜내자’ 등이 적힌 플래카드가 붙었다. 천막마다 가로 1.5m, 세로 1m 크기 태극기도 걸려 있었다. 지난달 21일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가 세웠고 주로 60대 이상 노인 20~30명이 교대로 숙박 농성 중이다.
종일 이곳을 지키는 자영업자 김모(63)씨는 “태극기 시민들이 전부 개개인으로 움직이고 구심점이 없었는데 이제 주말이 되면 이곳으로 모인다”고 했다. 현장 경비를 맡고 있는 조모(70)씨는 “박 대통령이 잘못한 일 없이 억울하게 탄핵 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각을 요구하는 세력인 소위 ‘태극기 극우’의 주무대는 광장과 아스팔트다.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워 농성하거나 집회를 열어 헌재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날 정기승 전 대법관 등 9명의 원로 법조인은 일간지 1면에 탄핵심판을 반대하는 의견을 담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태극기 극우는 부활을 도모하는 친박(근혜)계 정치인들에게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태극기 민심의 본질은 무엇인가’란 주제의 토론회를 주최했다. 친박 핵심으로 최근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은 윤 의원은 “태극기 집회는 박 대통령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우파를 결집해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쓰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는 강성 친박인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과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 의원이 이 자리에서 “제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했는데 맞냐, 틀리냐. 이미 태극기 바람에 꺼졌다고 보는데 맞냐”고 묻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맞다”고 호응했다. 김경재 회장은 “제가 아는 정통한 정보에 의하면 헌법재판관 두 명의 마음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양반은 자기 표 때문에 대통령이 파면 당하면 정치적 사형 선고를 내리는 건데 인간적 고뇌가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노골적으로 탄핵 기각설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 태극기 민심에 올라타려는 정황도 곳곳에 엿보인다. 이인제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은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11차 탄핵 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 윤상현 조원진 김진태 전희경 등 같은 당 의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태극기 집회 참석이 새누리당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진 않지만 막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움직임은 금도를 넘은 지 오래다. 촛불 집회를 폄훼하거나 탄핵 기각을 전망하는 내용의 ‘가짜 뉴스’ 형태 메시지가 온라인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거물급 고정 간첩의 측근이 술 마시고 중얼거린 말인데 촛불 집회를 5ㆍ18 광주폭동처럼 만들려고 상당수의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서울에 잔뜩 들어와 있다”고 전하는 식이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지라시)까지 등장했다. 홍 회장이 이날 전북 부안의 한 강연장에서 “헛소문”이라고 일축하면서 소동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대안을 기대하는 보수층 심리에 편승한 지라시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지지층을 결집해 여론 반전을 꾀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탄핵 심판에 되레 불리하고 보수가 최소한의 품격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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