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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적극적 예산국회를 기대한다

입력
2016.10.0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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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정상화되었다. 아직은 국정감사 중이나 곧 예산안 심의가 본격화된다. 지금까지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원하는 사업을 추가할 공간 마련을 위해 행정부 편성 예산을 좀 줄이자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히 미세조정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 배경엔 헌법 제57조가 자리 잡고 있다. 국회가 행정부 동의 없이는 예산 증액이나 신설을 못 하게 한 조항이다. 국회는 행정부가 만든 예산 메뉴판에서 빼거나 줄이기만 하지 크게 바꾸지는 말라는 취지이다. 이 조항은 우리의 재정 건전성에 그간 나름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는 행정부 입장을 무사 통과시키는 통법부가 아니며 행정부와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국회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 행정부의 동의를 구하면 되니 헌법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산심의에 왜 국회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할까.

첫째, 국회가 행정부보다 예산안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편성의 시작은 각 부처이다. 각 부처는 예산을 요구, 배정받아 나누어 주는 역할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없어지면 조직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갈수록 각 부처는 예산의 수혜자와 공동운명체가 되어 불요불급한 예산의 수호자가 된다. 기획재정부가 이 담합을 깨어 보려 하나 힘에 한계가 있다. 기존 예산 폐지는 과거의 잘못 인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면 국회는 의원이 바뀌면 과거 결정에 구속 당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현역의원 교체율은 매번 30~50%에 달한다.

둘째, 국회가 증세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5년 단임인 대통령은 재정지출 확대로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 올릴 유인이 있다. 그 결과 적자재정이 되면 결국 미래의 증세로 메워야 하는데, 우리 헌법 58, 59조는 세금과 국채를 모두 국회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미래의 세금인상으로 지금의 대통령이나 공무원이 손해 볼 일은 별로 없다. 반면 증세는 표심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적자 재정의 책임은 행정부가 아니라 결국 정당과 국회로 귀착된다. 정당은 미래에도 집권해야 하므로 증세를 초래할 재정확대에 대해 행정부에 비해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국회는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 미세조정을 넘어 과감한 메스를 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국회가 이런 모습을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국회의 책무성이 작동키 위해선 국민의 현명한 투표가 전제임은 물론이다.

셋째, 예산국회의 역할 강화는 국회의원의 행태를 바꿀 것이다. 지금까진 모든 의원이 행정부 곳간에서 곶감 빼 먹는 형국이었다. 한 사업을 따내면 다른 사업이 빠져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하다. 그러나 예산국회의 힘이 강화되면 국회에서 예산 한도 내 사업의 우선순위 설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이 발생하게 된다. 국회의원과 행정부 간 일대일 대결방식이 국회 내 협의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금까진 예결특위 막판에나 이러한 협상이 작동하였으나 이것이 공식화, 일상화된다. 이는 의회주의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예산은 정치적인 절차이다.

우리 국회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보고서 감수자가 문장 몇 개 수정하는 일만 한다면 평생 좋은 감수자가 될 수 없다. 역할을 줘야 역량도 올라간다. 지금은 과거보다 국회의 전문성이 높아졌다. 의원 개인의 전문성도 높아졌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가 설립된 이후 이들 지원기관의 질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인턴을 포함한 보좌진의 숫자도 1980년 중반과 비교하면 2배가 늘었다.

국회가 행정부 예산안에 대한 미세조정을 넘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국회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이제는 예산국회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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