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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기자

등록 : 2015.09.29 14:06
수정 : 2015.10.07 07:04

‘필요악’이라는 공혈견을 위하여

[고은경 기자의 반려배려]

등록 : 2015.09.29 14:06
수정 : 2015.10.07 07:04

다른 개에게 혈액 120cc를 나눠준 카호. 알마 블로그

일본 도쿄에서 짧은 기간 살았지만 그 사이에 정이 든 개가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도쿄의 주택가인 코이와 부근 동물보호소‘알마’에서 산책 봉사를 하다 알게 된 대형견 ‘카호’다.

쫑긋한 귀에 늘씬한 다리. 외모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성격이 좋았다. 다른 개들을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보호소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강아지들은 살뜰하게 보살폈다.

한국으로 돌아와 카호의 소식을 들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 보호소에서 노령에다 빈혈이 심한 닥스훈트가 발견됐는데 수혈이 필요해 카호가 피를 나눠줬다는 것이었다. “역시 카호!”라며 지인들에게 자랑을 했는데, 대부분 “개도 헌혈을 해?”라며 궁금해하는 반응들이었다.

그때부터 개 헌혈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간 대부분 관련 기사는 마약 탐지견이나 유기견이 제2의 견생으로 피를 나눠주는‘공혈견’이 되어 수십 마리의 생명을 살렸다는 등에 관한 것이었다. 평생 사람을 위해 일하거나 사람에게 버려졌는데 이후로는 공혈견으로 산다니. 대견하면서도 그게 반가워하거나 칭찬해야 할 일인가 씁쓸했다. 다행히도 은퇴견들이 공혈견이나 해부실습용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일면서 관세청은 수의대, 동물병원을 제외하고 공개입찰을 통해 사역견의 새 가족을 찾아주고 있다.

‘공혈견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공혈견을 두고 있는 대학동물병원뿐 아니라 국내 거의 유일한 민간 동물 혈액 공급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도 방문 취재는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수의사,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다른 동물 관련 사안 보다 공혈견에 대한 말을 아꼈다. 하지만 공통점은 모두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공혈견에 대해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절감하면서도 또 수혈을 해야 하는 다른 동물들이 있기 때문에 ‘필요악’이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공혈견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 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때어날 때부터 반려견, 공혈견으로 구분되어 있던 것은 아닐 텐데 어떤 개를 살리기 위해 평생 피를 뽑히면서 갇혀 살아야 하는 개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좀 과장되긴 했지만 인간에게 장기와 신체조직을 기증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만드는 영화 ‘아일랜드’의 동물판이라는 쓴소리가 마냥 엉뚱한 얘기로 들리지는 않는 이유다.

다른 개에게 혈액 120cc를 나눠준 카호(왼쪽). 초기에 보호소에 적응하지 못했던 호마래를 살뜰히 보살펴 이제는 언니 동생이 됐다. 알마 블로그

국내에서도 공혈견 대신 헌혈견을 모집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수년 전 건국대 수의대가 영국 동물보호단체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헌혈견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소형견 위주의 반려문화 등의 이유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동물혈액은행으로부터 혈액을 받을 시간 조차 없거나, 그곳에서도 필요한 혈액을 찾지 못할 때가 있는데 병원에서 주위 반려인들에 연락을 해보면 지나치지 않고 반려동물의 피를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물론 개나 고양이는 사람과 달리 자신의 의사에 따라 헌혈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반려동물과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보호자가 헌혈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건강검진 등의 보상도 반려동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베일에 싸인 공혈견에 의존하는 대신 서로 돕는 헌혈견을 늘리는 것에 고민해야 할 때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공혈견에 대하여

▶동물도 수혈을 받나: 개나 고양이도 사람처럼 혈액형도 있고, 응급 시에는 수혈을 받는다. 현재까지 밝혀진 개의 혈액형은 13종류인데, 개는 수혈 받기 전에는 항체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첫 번째 수혈은 혈액형과 관계 없이 가능하다. 반면 고양이 혈액형은 3종류로 사람과 마찬가지로 혈액형을 맞춰서 수혈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 수혈이 사람의 헌혈과 다른 것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피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공혈견를 두는 대학은 어디인가: 국내에선 서울대(대형견 5마리+은퇴견 2마리 거주), 경상대(중형견, 대형견 등 4마리) 등 일부 대학동물병원들이 직접 공혈견을 키우고 있지만 수혈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유기견이었는데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온 대형견을 공혈견으로 활용하거나, 직접 공혈견으로 키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어떤 곳: 국내 동물병원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혈액을 공급하는 곳은 한국동물혈액은행이다. 본지가 한국동물혈액은행에 방문 취재를 요청했지만 방역 문제로 공개는 힘들다고 밝혔다. 홈페이지에는 2003년 세계2위 규모로 공혈견 육성 농장을 증축했고, 200여마리의 공혈견을 키우고 있으며 2011년부터 고양이 혈액도 공급한다고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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