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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개념적 승인

입력
2017.09.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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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槪念)’의 국어사전 풀이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 지식’ 또는 ‘일반화한 추상적 생각’이다. 철학에서는 ‘보편적 관념’을 뜻한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거나 ‘미의 개념’과 같은 쓰임새가 그것이다. ‘개념 애니’ ‘개념 드라마’처럼 특정 분야를 지칭하는 단어 앞에 붙어 기준과 기본 틀이 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랑게는 형이상학에 대해 실증이 어렵고 시적 표현의 성격을 갖는다면서 ‘개념 시’라는 표현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개념 없다’ ‘몰(沒)개념’ 등의 용법에서는 국어사전 풀이와는 다르게 ‘예절’이나 ’매너’ 의 뜻에 가깝다. 누가 사리와 상황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 ‘개념 없이 그러면 되냐’고 핀잔할 때가 바로 이런 쓰임이다. 원래 군대에서 널리 쓰이던 용법이라고 한다. 설계 디자인 분야에서도 개념(적) 설계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설계의 최초 단계로 요구사항이나 축적된 기술 수준 등을 토대로 개념을 잡는 단계다. 이어 기본설계 상세설계 등으로 나아간다. 개념의 쓰임새가 참으로 다양하다.

▦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개념이 등장했다. 미 백악관이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엊그제 통화 내용 브리핑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구입할 수십억 달러 상당의 군사무기 및 장비 구매에 대해 ‘개념적 승인(conceptual approval)’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1일 두 정상 간 통화 후 백악관 브리핑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청와대 브리핑에는 없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위기를 틈타 무기 장삿속을 드러낸 것이라는 의심도 제기된다.

▦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던 트럼프 대통령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미국은 첨단무기 해외판매 시 의회 승인 등 절차가 까다롭다. 전략 무기인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도입이 지연됐던 게 한 예다. 개념적 승인은 그런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의미라는 설명이 맞는다면 북핵ㆍ미사일 대응체계 구축과 전시작전권 전환 준비에 도움이 될 요인이다. 개념 없이 고삐 풀린 한반도 군비경쟁 가속화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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