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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트럼프 시대 美 기후변화정책과 한국

입력
2017.04.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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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인 기후변화정책이었던 청정에너지계획(Clean Power Plan)을 실질적으로 무효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대표적인 기후변화 부정론자로 평가 받는 스캇 프루이트를 연방환경청(EPA) 장관으로 임명한 데 이어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정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미국의 기후변화정책 기조의 급격한 선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청정에너지계획은 미국 전력 생산에 있어서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등 저탄소배출 방식의 전력 생산 비중을 높임으로써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32퍼센트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당연히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이 높은 주들을 중심으로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되었다.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례 없이 하급심 판결 선고 시까지 청정에너지계획의 실행을 명하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9명의 대법관들이 5 : 4 의견으로 내린 바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로서 다수의견을 주도했던 스칼리아 대법관이 위 결정 직후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후임 대법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청정에너지계획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결국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는 후임 대법관이 인준되지 못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인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은 1997년 교토 프로토콜에 의회의 비준 거부로 참여하지 않은 이후로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정 이전까지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에는 비교적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상징적인 조치가 청정에너지계획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한 청정에너지계획의 폐기가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배출 저감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받은 중국 정부가 기후변화대응 노력의 수준을 마찬가지로 줄이고 이것이 결국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사실상 무산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타결은 결국 협상의 막후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담판으로 이루어진 성과였다. 청정에너지계획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 담판의 성사를 위해 시진핑 주석에게 약속했던 최소한의 약속이라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한 청정에너지계획의 폐기는 중국으로 하여금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준수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할 것이다. 치킨게임 혹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의 성격을 갖는 기후변화대응문제의 속성상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가들은 서로 다른 국가들의 선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그 같은 조치는 기후변화대응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기는 것이고, 중국이 그 기회를 활용해서 보다 선제적인 청정기술개발 노력을 하는 경우에는 세계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이처럼 급박하게 진행되는 국제질서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대응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정부에서 녹색성장이라는 구호 하에 비교적 선제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창조경제가 주된 국정철학이었던 지금의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기후변화정책을 내놓지 못했었다.

기후변화정책은 본질적으로 국가에너지정책과 관련이 있고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혹은 새로운 산업성장의 동력을 찾으면서 국제질서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조기 대선의 국면에서 각 정당 후보들의 공약에서 주목할 만한 기후변화대응정책을 찾아볼 수 없음은 매우 안타깝고 우려되는 일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각 당 대선후보들의 관심과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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