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승마지원ㆍK재단 모금 등
최씨와 공모한 13건 중 11개 유죄
블랙리스트ㆍ청와대 문건 유출 등
“사실로 충분히 인정” 양형에 반영
재판부 “반성은 않고 책임 전가
엄중한 책임 묻지 않을 수 없어”
징역 24년형을 선고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재판 결과는 국정농단 사건이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이유를 확인시켜줬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유죄를 받은 16개 혐의 가운데 11개를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공모해 벌인 범행으로 봤다. 이 때문에 이날 재판은 지난 2월13일 있었던 최씨의 1심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 김세윤)는 18개 혐의 중 16개에 대해유죄를 선고했다. 이 중 13개 혐의는 최씨와 결과가 같았다.
뇌물 혐의는 5개 중 3개만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해 72억9,000여만원의 승마지원을 한 것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출연한 것 ▦최씨가 SK그룹에 현안 해결을 내걸고 89억원의 뇌물을 요구한 것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공범 관계로 적시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액은 592억여원 가운데 약 232억원만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금액이 가장 큰 SK 관련 뇌물액을 기준으로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특가법(제2조 2항)은 ‘뇌물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액수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과 미르 ·K재단에 낸 출연금 220억원에 대해서는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을 인용하며 최씨 선고 때와 마찬가지로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 만으로는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삼성이 그 현안을 묵시적 청탁으로 박 전 대통령 측에게 제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밖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모금 과정에서 대기업들을 압박해 출연금을 받은 것 ▦현대자동차그룹이 최씨 측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것 ▦포스코·KT·GKL 등이 스포츠팀을 창단해 최씨 측 회사에 운영을 맡기도록 한 것 ▦광고업체 포레카 지분 강탈을 시도한 것 등 직권남용ㆍ강요죄 관련한 8개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최씨와 겹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의 ‘별개 범죄’ 5개는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이 가운데 직권남용 등 3개 혐의가 엮여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명단)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비록 피고인이 구체적 행위마다 인식하지 않았다 해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만큼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시켜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퇴진을 압박한 혐의 역시 박 전 대통령 책임이 무겁다고 봤다. 재판부는 “조 전 수석은 수사기관에서 손경식 CJ회장을 만나 ‘이 부회장이 물러나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이후 박 전 대통령을 만나 ‘CJ건은 말한 대로 처리했다’고 보고해 사실로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역시 유죄로 봤다. 다만 유출된 문건 47건 중 33건은 압수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하고 14건만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도 당연히 문건이 전달된 사실을 알거나 인식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형량이 최씨(20년형)보다 4년 더 많은 점에 대해서는 국정 최고 책임자였다는 점과 함께 별개 범죄가 유죄로 인정된 게 양형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주문에서 형량을 밝히기 앞서 “납득할 수 없는 변명” “책임 전가”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답지 못한 자세를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권력형 비리로는 역대 최장의 유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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