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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9 15:27
수정 : 2017.05.09 15:27

연애상대로 바라본 대선후보

등록 : 2017.05.09 15:27
수정 : 2017.05.09 15:27


편집자주 : 이번 19대 대선은 강력한 양자구도가 아니라, 다양한 후보들이 경쟁하면서 각자의 특색을 드러낸 각축장이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유권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각 후보들의 특징을 여러 가지 상황에 빗대 풍자하곤 했는데요. 블로그와 비슷한 형태로 글을 공유하는 플랫폼인 브런치에 올라온 재미있는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하며, 첨부 사진은 한국일보 자료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1

대학에 입학하고 오티를 떠났다. 거기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잘생긴 외모에 어딘지 신입생들에 비해 좀 나이 들어보이는 남자.

"안녕하십니까. 샴슈솅 문졔인입니다."

'아... 역시 삼수생...' 우리는 곧 만나기 시작한다. 좋은 사람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 반한 것도 있다. 아니 사실 그게 컸다.

만나면서도 큰 탈 없는 연애였다. 잘생기고 반듯한 훈남 만난다고 부러워하는 여자들이 주변에 꽤 있는데... 부정할 순 없지만 나는 막상 여자로서 뜨악하게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한테 잘못하는 것도 없고 크게 속 썩이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 뭐.

앞집에 툭하면 시비걸고 희롱하는 양아치가 하나 살아서 오빠가 쟤 좀 어떻게 해보라고 했더니 대화로 풀자고 해서 좀 서운하고 화났던 일은 있었다. 저런 미친놈이랑 무슨 대화를 해... 굳이 도발할 필요가 있겠냐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방식은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아, 그리고 1년 넘게 사귀면서도 내 친구들 이름 제대로 못 외운다고 몇 번 싸운 일이 있었다.

오빠, 예지가 아니라 예자라고 몇 번을 말해? 오빠, 우리 언니 이름도 헷갈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오빠, 내 말에 맨날 그냥 웃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주면 안돼? 나는 왜 오빠가 내 말을 열심히 안 듣는 것 같지? 리액션 좀 보여주면 안돼? 맨날 왜 그렇게 애매하게 말해?

소소한 불만들이 쌓이고 자연스럽게 감정이 식어서 헤어졌지만 헤어진 후에도 나쁜 기억은 딱히 없다. 누가 물어보면 좋은 사람이었어, 라고 늘 말하게 될 것 같아. 근데 좋은 사람이긴 했는데 뭐랄까... 그래, 매력은 없었지. 미움도 없지만 추억도 없는. 딱히 미련도 남는 것도 없는. 어쩐지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아.

# 2

달오빠와 헤어지고 이별의 슬픔을 잊고자 알바에 매진하던 때. 쌀국수에 꽂혀있던 때라 뽀집에 알바로 취업했는데, 사장놈이 근방에서 장사 제일 잘 되는 고대앞 뽀집에 가서 육수 비법을 좀 염탐해 오란다.

고대앞 민족뽀집에서 일하며 그를 처음 만났다. 한번 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하루에 일곱번씩 쌀국수를 처묵으러 오는데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솔직함과 박력에 끌려 사귀기 시작. 상남자 스타일이라 무드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히 재미있는 연애가 진행돼 사귀면서 점점 정드는 스타일.

술만 먹으면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얘기, 어렸을 때 친구놈들이랑 사고친 얘기 다 꺼내놓는데 들을 때마다 심장 불안불안하고 대체 이런 걸 나한테 왜 다 털어놓는지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도 반년 넘게 사귀다보니 그래도 예측가능한 놈이 낫다는 생각이 들고, 웃는 얼굴 뒤에 어떤 다른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남자는 결혼하면 돌변한다던데... 그런 류의 불안감은 없어서 오히려 속편하기도.

데이트는 주로 포차에서 소주 까면서. 그런 쪽으로는 기대도 안 했는데 개그맨 수준으로 너무 웃김. 웃다가 포차에서 의자랑 같이 몇번 뒤로 넘어감.

근데 그야말로 빡도는 발언을 많이 해서 자주 싸웠다. '여자가 말이야'로 시작해 숨쉬듯 성차별 발언 남발. 처음엔 웃으면서 듣다가 점점 열받아서 그러는 너는 남자XX가 왤케 쪼잔하냐며 열나게 미러링하면서 육두문자 남발하면서 싸우곤 했다.

나는 열받아서 정색하는데 갑자기 껄껄 웃으며 "역시 여자들이란 속이 좁구만" 혼자 사람좋은 보살 미소를 날리며 목구녕으로 소주를 꿀떡꿀떡 넘기는데 소주에 돼지살정제(발정제 아니고 정자 죽이는 살정제)타서 죽이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근데 또 뒤끝은 없고 사과는 잘 하는 스타일이라 싸움이 길어지진 않음. 결혼상대는 아닌 것 같아 결국 헤어졌는데 밤마다 같이 소주까며 깔깔대던 추억을 못잊어 새벽마다 술먹고 전화질 좀 했었지.

#3

코카콜라같던 남자와 헤어지고 고구마를 먹은 듯 매일이 갑갑할 때 등 떠밀려 나간 소개팅에서 그를 만났다. 주선자 말이 '배울 점이 많은 남자'라는데 맞선도 아니고 소개팅 하면서 그런 코멘트가 붙는 게 너무 웃겨서 호기심에 한 번 만나봄.

외모에서나 성격에서나 호감은 거의 전혀 못 느꼈지만, 조건도 나쁘지 않고 정말로 배울 점도 많은 남자같고 무엇보다 하도 내가 좋다길래 일단 만나기 시작. 사실 워낙 거침없는 남자를 만나다보니 이제는 승질 없는 놈을 만나야겠다는 강박 비슷한 게 있기도 했던 것 같다.

만나보니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같이 술마시고 나는 술병나서 지각해도 매번 자기 할일을 다함.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내 인생 앞길도 진지하게 설계해주고 조언해주고. 무엇보다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서로 존대를 해봤는데 어색했지만 왠지 이게 바람직한 것 같았다.

그러다 만난지 이주일 째 갑자기 잠수를 타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아무일도 아니라며 사람 답답하게 하기 시작. 뭐 기분 나쁜 일 있냐고 물어봤더니 "없다는데 왜 그러시죠?"

...

짜증나서 나도 연락안했더니 1주일 후 온 카톡 하나.

"그때 왜 두시간동안 답장을 안했습니까? 1 지워진 거 다 봤는데 나 너무 마음 상했습니당"

황당해서 기억도 잘 안난다 어쨌든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만나기 시작했는데 일주일도 안 지나서 같은 일 반복.

"그때 왜 친구들 앞에서 내가 재밌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지요? 제가 노잼입니까? 말씀해보십시오~ 정말 실망입니다앙"

오빠 너무 소심하고 답답하게 구는 것 같아...요

했더니 어딘지 불쾌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리고 집에 가버린다. 연애는 힘들겠구나 싶어서 이별통보했는데... 그로부터 일년 후.

집밖에서 이상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을 열어보니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만세를 부르며,

“안철숩니닼~!!!!! ”

“다시 만나봅시닼~!!!!!!! ”

“나 많이 변했습니닼~!!! ”

“지금까지 일편단심인 남자 누굽니꽈~~!!!!! ”

갑자기 집앞에 찾아와 다시 만나자는데 무엇보다 그 바뀐 목소리에 너무 어이가 없다.

‘뭐,뭐야... 왜 이래...? ’

나중에는 너무 웃겨서 아 오빠 왜 이래ㅋㅋㅋㅋㅋㅋ이러지맠ㅋㅋㅋㅋㅋㅋㅋ (손으로 입막으며) (눈물콧물 흘리며) 야 이~ 앜ㅋㅋㅋㅋㅋㅋㅋ 끆끅

친구들한테 카톡을 보낸다.

야 대박 ㅋㅋㅋㅋㅋ 나 작년에 잠깐 만났던 의대 오빠있지? 오늘 집앞에 찾아와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무슨 루이암스트롱인줄.

#4

외모는 평범한데 여러 사람들이랑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딱히 적도 없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 그냥 좀 괜찮게 생각하던, 그는 모임에서 만난 오빠였다.

졸업을 거의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알바비 못 받고 과제 팀플 독박쓰고 엄마한테 전화로 욕먹고 똥씹 표정으로 집에 가는데 그 길에 우연히 만나서 같이 맥주를 한잔 마셨다. 샌님 스타일이라 남자로서 끌림은 크게 없었으나, 너무나 조근조근 합리적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는데 거기에 꽂혀서 사귀기 시작. (말빨로 알바비도 대신 받아다주었다!)

샌님과라 싸울 일도 없고 내가 컨트롤 하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은근히 똥고집이라 그거 때문에 싸울 때마다 환장할 것 같고 싸움이 길어짐. 말을 너무 잘해서 싸울 때마다 말려들어감. 조목조목 논리 제시해가면서 싸우는데 듣고보면 다 맞는 말이라 더 열받음.

학창시절에는 두루두루 여러 사람이랑 잘 지내더니 매사에 합리 논리 찾아대고 그 고집스런 성격 때문에 회사들어가서 상사한테 찍히고 미움 받음. 관계가 잔잔하게 나쁘진 않은데, 깊은 애정으로는 발전이 안되고 나도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다가 왠지 앞날이 가시밭길일 것 같아 헤어졌다.

나중에 지인들로부터 그 고집스런 성격 덕에 전화위복으로 인생이 오히려 잘 풀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결혼했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딸내미가 그렇게 이쁘다네. 근데 딸내미 이름이 담이라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좀 쓰렸다. 오빠, 왜 딸내미 이름 담이라구 지었어......?

어쨌든 나쁜 오빠는 아니었어. 좋은 사람이었지... 쭉 잘 됐으면 좋겠네~

#5

이 언니는 어렸을 때 앞집 살던 언닌데 진짜 큰언니 왕언니 같았다. 내가 동네 남자애들한테 괴롭힘 당하면 가서 싸워주고 대신 때려주고 그랬음. 나이들어서 내가 연애를 시작하니 언니는 내가 만난 남자는 다 싫어하더라.

문과 연애하고 헤어지니,

"야 얼굴만 번지르르하고 저런 남자는 의지가 약해서 은근히 여자 고생시켜. 너는 좀 남자 얼굴 좀 그만 따져"

홍과 헤어지니,

"딱봐도 미친놈이구만 내가 첨부터 저 XX 싫댔지? 너는 남자 박력 좀 그만 따져."

안과 헤어지니,

“너는 저게 남자로 느껴지든? 저 씰룩대는 입술만 봐도... 후 됐다. 답답한 놈들 좀 그만 만나.”

유와 헤어지니,

"내가 말 많은 놈들은 안된댔지? 샌님 좀 그만 만나"

다 처음 만난건데 "그런 놈 좀 그만 만나" 라는 화법으로 언제나 날 어리둥절하게 한다.

어느 날 같이 술먹다가,

"언니 그래도 나름 다 잘난 놈들이었어. 왜 이렇게 내 전남친들을 욕해? 그럼 언니가 한번 소개해줘봐. 대체 누굴 만나라는거여"

그래서 언니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몇 번 했었다.

한 번.

두 번.

언니랑 절교할 뻔했다.

끝.

정소담 브런치 작가 ( ▶브런치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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