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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산 기능 무력화시킨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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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산 기능 무력화시킨 최순실

입력
2016.10.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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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대통령 메시지 컨트롤하고, 문체부 인사 좌지우지하고..

국회 상임위 회의록에서도 문제 발언 잇따랐지만.. 그대로 통과

최순실/2016-10-21(한국일보)
최순실/2016-10-21(한국일보)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그의 측근들이 국가예산을 제멋대로 주물러왔다는 의혹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인 나랏돈을 쓰려면 엄격한 심사와 여러 의사결정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최씨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장악함과 동시에 관련부처 요직 인사에 개입하면서 국가예산 기능을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예산 심사 과정에서의 국회 상임위 회의록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최씨와 그 측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국정과제인 문화융성 예산안을 직접 구상하고 작성했다. 지금까지 언론이 입수한 문건은 문화융성 관련 프로젝트 3건과 예산안 편성 문건 2건인데, 입수된 문건에서만 이들은 12개의 사업과 관련해 지출액이 1,796억원에 이르는 예산안을 만들었다. 특히 이중 차은택씨가 주도하는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 예산은 처음에는 400억원 관련 예산이 배정돼 있었으나 올해 904억원이 책정된 데 이어 내년에는 1,278억원으로 불어나는 등 5년간(2015~19년) 총예산이 7,176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으로 발전했다.

이와 별개로 최씨의 사재 축적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의심을 받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예산도 최소 수백억원에 이른다.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미르ㆍK스포츠 재단과 관련된 지출은 865억원에 달한다. 또 개발도상국 태아 성별감별 사업(코리아에이드), 아침 새마을 조회 및 체조(새마을사업) 등 상식 밖의 항목도 대거 포함돼 있다.

최씨 등이 문화정책 국가예산을 이렇게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데는 한쪽으로는 대통령의 메시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른 쪽으로는 관련부처 인사를 좌지우지해온 결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사에서부터 임기 내내 줄곧 ‘문화융성’을 주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간 박 대통령 발언 중 창조경제만큼이나 자주 언급된 것이 문화융성이었을 정도다. 문화융성 관련 보고서에 최씨 필체가 발견되는 등 관련 사업을 최씨가 직접 설계한 정황이 적지 않다.

구체적인 사업 관리를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ㆍ차관 인사 등에 광범위하게 개입해 왔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의 대학 은사이고,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역시 차씨의 외삼촌이다. 최씨는 김종 문체부 차관을 통해 현안을 보고받아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처럼 최씨가 대통령의 메시지와 인사를 장악하면서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정부예산안 편성 과정의 ‘최종 수비수’인 기획재정부의 견제 기능도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예산당국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예산안이 기재부로 넘어오기 전에 일어나는 의사결정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며 “특히 VIP(대통령) 관심사항이란 꼬리표가 붙으면 절대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문화ㆍ체육 관련 사업이 타 분야에 비해 이벤트성ㆍ일회성 지출이 많아, 최씨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쉬웠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강하게 제기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30일 한국일보가 작년 11월 2016년 예산심의에 들어간 19대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교문위) 회의록을 확인해 본 결과, 9명 의원 중 7명이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에 감액 의견을 냈다. 이들이 공동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융복합 실체가 없다 ▦콘텐츠진흥원 등 다른 기관 사업과 겹친다 ▦문화창조벤처단지 예산을 증액하는 과정에서 국가재정법을 위반하는 등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진후(정의당) 의원은 “뭔가에 쫓기듯 ‘문화창조융합’ 이런 용어 하에 각 부분들을 통합시켰다는 인상이 굉장히 강하게 든다”고 비판했고, 배재정(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사업 내용이 기존 사업과 중복 우려가 많음에도 ‘우리는 융합할 것이니까 다르다’고만 말한다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특히 서울 청계천변에 위치한 관광공사 건물을 문화창조벤처단지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이번에는 급한대로 관광기금을 끌어다 쓰고 그 다음에는 일반예산으로 편성하는데 이렇게 정부 마음대로 예산을 편성해서는 안 된다” “문체부가 이미 다 결정하고 내년 예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은 여러 의문 제기에 대해 “정부 차원의 중점적 사업이니 꼭 믿어주고 지원해달라”는 말만 반복했고, 대부분 예산은 그대로 통과됐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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