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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특강ㆍ보충수업에 허덕… 개학만 기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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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특강ㆍ보충수업에 허덕… 개학만 기다리죠"

입력
2015.07.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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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등 선행학습에 시달리느라 여행커녕 친구 만날 시간도 없어

"다양한 경험 쌓으면 되레 성적 올라… 부모들 시간 낭비라는 인식 바꿔야"

전국 초ㆍ중ㆍ고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커다란 가방을 멘 채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전국 초ㆍ중ㆍ고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커다란 가방을 멘 채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서울 A중 2학년 윤모(14)군은 방학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빨리 개학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는 하루 1시간이었던 영어학원 수업시간이 방학을 맞아 2시간30분으로 늘고, 일주일에 3번 가던 수학 학원은 매일 가게 됐다. 결국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점심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학원에서 공부만 하고 있다. 선행학습을 위해 고교 영어와 중3 수학을 배운다. 윤군이 방학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이지만, 주말에도 학원 특강과 보충수업이 있어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 윤군은 중학생이 된 이후 한 번도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윤군은 “학교 다닐 때보다 방학 때의 생활이 더 힘들어진다”며 “학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방학다운 방학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B중 3학년 양모(15)양도 2주 전 시작된 방학이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특성화고에 진학하기로 진로를 정해 고교 입시를 위한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막막하다. 새벽 늦게 잠들어 오전 11시쯤 일어나고, 집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는 생활의 반복이다.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다. 양양은 “외국의 호텔 등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 방학 동안 도움이 될만한 활동을 하고 싶지만,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캠프나 프로그램이 뭐가 있는지 모른다”며 답답해했다.

청소년들에게 방학은 더 이상 설렘이나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초ㆍ중ㆍ고생 1,2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름방학 청소년생활 요구조사’(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방학 동안 여행(20%), 영화ㆍ연극ㆍ공연 관람(12.5%), 스포츠활동(11.3%)을 하고 싶은 일로 꼽았지만, 실제로는 학원 수업 등 공부(25.0%)와 TV시청(16.9%), 잠자기 등 휴식(14.2%)을 하며 방학을 보냈다. 특히 고교생은 ‘여름방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학교 보충수업 및 학원’(27.7%)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방학 중 청소년들의 체험활동은 최근 몇 년 간 발생한 안전사고 때문에 더욱 위축됐다. 2013년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고교생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청소년수련원과 청소년야영장, 유스호스텔 이용 청소년 수는 2012년 1,100만명이 넘었다가 지난해 589만명으로 절반이나 줄었다. 올해 역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여파로 단체 활동을 꺼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에선 청소년 시기 다양한 경험의 가치가 너무 평가절하돼 있다고 지적한다. 김진호 한국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의 체험이나 활동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 가치를 두지 않지만, 외국 부모들은 자녀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험을 방학 동안 하도록 한다”며 “좋은 벽돌을 쌓아 훌륭한 건축물을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경험이라는 자산이 쌓여 훌륭한 인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방학이 3개월인 미국은 방학 직전 교육청에서 학부모들에게 시민단체, 대학, 지역사회가 주최하는 각종 청소년 캠프와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관심과 특성에 맞춰 프로그램을 선택하는데,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들은 신청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6명(61.0%)이 방학 중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로 ‘공부해라’를 꼽은 것과 대비된다.

방학 동안의 경험은 개학 후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진호 교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방학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온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성적이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경험 격차’가 결국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설명했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도 “외국에선 자녀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청소년기의 다양한 활동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이를 중시한다”며 “우리나라 부모들도 청소년 활동이 시간낭비가 아닌, 자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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