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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만난다니…" 얼굴마다 꿈결같은 설렘이 번졌다

입력
2015.10.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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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하루 전 속초에 모인 가족들

60여년의 기나긴 기다림·그리움

빛바랜 사진 보며 흥분·회한 젖어

"귀한 물품" 초코파이 8박스 담고

치약·칫솔·양말에 두통약·파스까지

"빠진 것 없나" 선물 보따리 살펴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루 앞둔 19일 집결지인 강원 속초시 한화리조트에 도착한 남측 이산가족들이 접수대에서 등록을 하고 있다. 속초=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루 앞둔 19일 집결지인 강원 속초시 한화리조트에 도착한 남측 이산가족들이 접수대에서 등록을 하고 있다. 속초=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강원 속초시 한화리조트에 모인 1차 상봉 대상 남측 가족들은 60여년만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쇠약해진 건강 탓에 지팡이를 짚고 오거나 휠체어에 의지하는 등 이동 자체가 힘겨워 보이는 어르신이 다수였지만 마음은 벌써 금강산에 닿아 있는 듯했다.

남측 가족들은 북측의 가족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통보받았을 때의 놀랍고 벅찬 감정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보였다. 북측 사촌오빠 편히정(84)씨를 만나러 가는 편숙자(78ㆍ여)씨는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살점이 벌벌 떨리더라”며 “만나도 얼굴은 모를 테지만 (그래도) 뼈다구니까 반갑지”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측 가족들은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기다려온 만남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모습이었다. 이번 상봉단의 최고령자로 북측의 여동생 김남동(83)씨를 만나는 김남규(96)씨는 상봉이 확정된 후 하루 3번 꼬박꼬박 운동을 나갔다고 한다. 가족들은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건강관리에 부쩍 애를 쓰셨다”고 귀띔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한적)도 갈수록 고령화되는 이산가족들의 건강 상태를 감안해 이번 상봉행사부터 의료진과 구급차를 각각 20명, 5대로 대폭 늘렸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던 지난해 2월 상봉 때만 해도 의료진은 12명에 불과했고 구급차도 3대뿐이었다.

당초 1차 상봉 대상 남측 가족들은 393명이었지만, 실제 이날 등록을 마친 이들은 389명으로 4명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상봉을 포기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통일부 관계자는 “금강산에 올라가서 상봉이 성사되기 직전까지도 어르신들의 건강 변수는 많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김용분(67)씨가 북측에 있는 오빠 김용덕(87) 할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김용분(67)씨가 북측에 있는 오빠 김용덕(87) 할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남측 가족들 중에는 빛 바랜 옛날 사진을 준비해온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도 여전했다. 북측의 큰 오빠 김용덕(87)씨를 만날 예정인 막내 여동생 김용분(67)씨는 큰 오빠의 얼굴이 담긴 큼지막한 흑백사진을 출력해 왔다. 김씨는 이산가족 등록 접수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오빠의 사진을 연신 들여다봤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 당시 한적으로부터 큰 오빠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은 적이 있던 터라 이번 상봉이 더 꿈처럼 다가오는 듯해 보였다. 북측 가족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남측 가족들의 사진파일을 USB에 저장해온 이들도 있었다.

북한 가족들에게 전달할 선물 보따리에는 치약ㆍ칫솔ㆍ양말 등 생필품과 추운 겨울에 대비한 방한용 점퍼ㆍ내의 등이 주로 담겨 있었다. 북한에서 인기 있다는 초코파이를 넉넉하게 챙겨온 가족도 있었다. 북측의 정규현(88)씨를 만나러 가는 조카 정정애(47)씨는 “북한에서 초코파이가 귀하다 길래 8박스나 챙겼다”고 말했다. 조씨 가족은 북측의 가족들이 혹시 사용법을 모를까 봐 준비해온 두통약과 파스에다 구체적인 용도를 적은 메모지를 붙여놓기도 했다.

북측의 동생 림달수(81)씨를 만나러 가는 임찬수(88)씨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다른 동생들이 선물을 잘 포장하고 있는지 일일이 살피며 다그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한적 관계자는 “북측 가족들이 선물을 집까지 잘 가져갈 수 있는지, 특히 현금을 빼앗기지 않고 받아갈 수 있는지 가장 궁금해 한다”고 전했다.

한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이날 남측 가족들을 만나 “이산가족 상봉을 책임진 당국자로서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상봉뿐 아니라 전면적인 생사 확인 작업이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속초=공동취재단ㆍ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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