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대한 국회 논의 개시를 앞두고 여야가 개선안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은 세제 혜택 확대를, 야당은 조세 형평성 보완을 요구하며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심 잡기 경쟁으로 자칫 ISA제도가 ‘누더기 법안’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국회에 따르면 기획재정위원회는 17~19일 조세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세법 관련사항을 일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세법 심사의 주요 쟁점사안 중 하나인 ISA의 과세특례 신설안은 18일께 심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국회 심사를 앞두고 정치권은 ISA제도를 둘러싼 개선 방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는 11일 금융개혁 중점과제 10여개를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사안으로 ISA 개선방안이 거론됐다.
ISA는 예ㆍ적금과 펀드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넣어 굴리면서 얻은 수익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상품으로 일명 ‘만능통장’으로 불린다. 정부는 올 8월 ISA 제도에 대한 도입방안을 확정 발표하며 납입한도는 연 2,000만원, 운용수익 비과세 한도는 200만원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수익에 대해서는 9%의 분리과세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근로ㆍ사업소득이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어 주부, 농민 등은 혜택을 보기 어렵다“ “세제 혜택 규모가 지나치게 적다” 등의 불만들이 쏟아졌다.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는 ISA의 가입 대상을 전 국민으로 넓히고, 비과세 한도도 기존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와 함께 ISA의 의무가입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해 주는 서민층의 대상 범위를 이미 발표한 ‘연 근로소득 2,500만원 이하 또는 사업소득 1,600만원 이하’에서 좀 더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중도 인출에 대한 제한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안에는 ISA 가입자가 사망하거나 6개월 이상 입원해야 하는 중대 질병이 발생하는 때에만 중도 인출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서민층이나 15~29세 청년층 가입자에 한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중도 인출을 허용해주는 등의 보완책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야권에서는 정부안이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며 저소득층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연간 2,000만원을 투자할 수 있는 계층은 부유층일 가능성이 높고, 이들에 대해 비과세 한도(200만원) 초과 차익에 대해 9.9%로 분리과세를 하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다. 기재위 소속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소득공제장기펀드나 재형저축으로 연간 1,500억원 정도 세수가 줄었던 반면 ISA는 세수 감소분이 5,500억원에 달한다“며 “이 많은 세수감소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게 돌아가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야권의 일부 의원들은 이런 문제점을 이유로 아예 ISA의 도입을 재검토하자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정부는 비과세 혜택을 대폭 늘릴 경우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정치권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나온 얘기들일 뿐이라 검토하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재정 여건 등을 감안하면 기존의 정부안대로 통과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움직임은 총선을 앞둔 표심 잡기의 성격이 짙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정기국회인 만큼 세법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입장이 표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여권이 최근 내놓은 개선 방안들은 금융투자업계와의 간담회에서 나온 민원을 대부분 수용해 발표한 것”이라며 “ISA제도의 세부 내용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촉박한 일정 탓에 기형적인 제도가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장펀드와 재형저축 등 세제혜택을 주는 기존의 금융상품들이 올해로 일몰 종료되기 때문에 ISA 제도는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여당과 야당이 원하는 것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ISA가 당초 목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애당초 정교하지 못한 정부안이 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정부가 제도의 활성화와 소득 재분배 기능 가운데 어느 쪽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방안이 나오는 바람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내년 초 시행이라는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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