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에서 ‘진박(진실한 박근혜 사람) 마케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비박계는 물론이고 범박계 진영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박 마케팅이 계파간 밥그릇 싸움 성격으로 변질되면서 당내 반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진박 마케팅에 대한 역풍이 20대 총선 전체 선거판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나흘째 영남에서 진박 마케팅 행보 중인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3일 대구 정종섭(동구갑)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에서 확실히 지켜지고 있다”고 유승민 의원의 ‘헌법 제1조’ 발언을 비꼬았다. 그는 추경호(달성) 예비후보 사무소 개소식에선 “솔직히 대통령 뽑았으면 해달라는 거 한 번 해주고 그 다음에 잘 했느니 못했느니 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또 경남 진주에서 열린 박대출(진주갑) 의원의 예비후보 사무소 개소식에도 참석해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박 의원을 사랑해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동안 당 내에서는 어느 정도 최 의원의 진박 지원사격을 눈감아 줘야 한다는 유연한 입장이 적지 않았다. 진박 후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는 TK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당내 경선 문턱조차 넘지 못할 경우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것은 물론, 대선 국면에서 여권이 핵분열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 의원이 ‘같은 당 현역 의원을 떨어뜨려달라’는 주문을 노골적으로 선거 캠페인으로 내세우는 데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을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계파 갈등이 전면화하는 상황까지 얽히면서 당내 기류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범박계 한 중진 의원은 “진박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단추를 거꾸로 꿰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의원은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한 가지가 정치인의 밥그릇 싸움”이라며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나섰다고 하면 될 일을 대통령 마케팅을 하겠다고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면 시민들이 어떻게 보겠냐”고 강조했다.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감은 더하다. 수도권 한 재선의원은 “진박 마케팅으로 논란이 인다는 것 자체가 유권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수도권 선거전에는 분명한 악재”라고 지적했다. 여권 관계자는 “최 의원이 동네방네 다닐 게 아니라 어느 한 지역에 가서 강하게 메시지를 내놓는 쪽이 나았다”며 “대구 물갈이론, 진박 선택론을 너무 빨리 띄운 것도 실책이었다”고 말했다.
PK지역의 반발은 더 노골적이다. 신성범(경남 산청ㆍ함양ㆍ거창)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최 의원이 전날 경쟁자인 강석진 예비후보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한 데 대해 “자기 사람 심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경남지역 한 재선 의원은 “친박ㆍ진박 얘기가 나오면 지역 주민들은 ‘저거들(자기들)끼리 그러고 있네’라는 의미에서 ‘저박’이라고 꼬집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에서도 최 의원이 1일 이헌승(진을) 의원과 윤상직 예비후보(해운대ㆍ기장을)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 총선 주자들이 일제히 반발하는 등 계파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권이 적전분열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당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친박계 세몰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얘기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친박·비박이라는 게 새누리당에서 많이 엷어졌는데 당의 중심을 지켜야 될 분들이 선거를 앞두고 당의 분열을 일으키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대구=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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