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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추억

입력
2015.10.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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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0돌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지난해 ‘다이빙 벨’ 상영 문제로 인해 예산이 삭감되었지만 그래도 국제영화제에 맞는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20년 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본격적인 국제영화제라 그 당시는 시행착오들이 많았다. 나는 제1회 때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서 자원봉사자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했다. 부산영화제 자원봉사를 지원한 동기는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영화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거기에 이 영화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원봉사자의 눈으로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일은 나에게 기대 이상으로 한국의 많은 변화를 보여 줬다.

가장 놀라게 한 일은 개막식 때 일어났다. 화려한 오프닝 행사에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상메시지가 나온 순간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외국인의 난망이라 할 수 있는 막연한 이미지이지만 군사정권 때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싶었다. 1996년은 아직 학생운동의 불씨가 남아 있던 시절이며 80년대만큼 심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아직 정부 비판 시위를 하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의 발음에 얽힌 개그가 유행하는 등 과거 대통령과 달리 왠지 친근감을 주는 지도자였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터진 웃음에 나는 한국의 민주화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일본영화가 처음 일반인에게 스크린으로 공개된 것도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상영된 일본영화는 ‘하나비’ ‘잠자는 남자’ 등 손에 꼽을 편수였다. 일본대중문화가 개방 안 된 시기라 “시기상조다” “일본의 퇴폐문화가 들어온다”는 등 일본영화에 대한 비판이 많은 시기였지만 상영된 작품들은 예술성이 뛰어났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이어 ‘하나비’는 그 후 일본영화로는 처음 한국에서 극장 개봉이 되었다.

아무튼 일본영화가 상영됐어도 편수가 많지 않아 일본인은 게스트도, 언론도, 손님도 많지 않았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배치된 나는 통역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대신 요트경기장 창고로 몰래 영화제 현장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매표소로 안내하는 일을 했다. 의외로 표 없이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지시에 따라 줬지만 가끔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여 막는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높으신 분이라면 표를 미리 구매하시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에서 꺼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사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정중히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관객은 많은 음식물을 들고 상영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음식물은 보관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엄마 같은 사람한테”라며 항의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청년이었던 나에게 정말로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였지만 규정상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겠지만 관객도 운영하는 우리도 국제영화제가 뭔지도 모르고 미숙했다. 그때는 모든 상영이 끝나고 같이 근무하는 친구들과 간단한 뒤풀이를 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때 참으로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온 해외게스트들도 이구동성으로 영화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 즐겁고 부산의 거리가 좋아 즐겁다고 했다. 실제로 그때 남포동 포장마차에 가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접근하기도 쉽고 어떨 때는 함께 소주잔을 기울기도 했다. 영화제로서 과도기이었기에 미숙한 일도 많았지만 내게는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

20돌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를 넘어 이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규모가 커졌고, 안전을 고려해 옛날보다 규제가 많아졌으나 그것이 국제영화제로서 바르게 성장한 모습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올 때마다 옛 생각이 난다. 부산영화제에는 그 시절의 내 자신이 겹쳐져 있다.

쓰치다 마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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