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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백일장' 신춘문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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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백일장' 신춘문예의 모든 것

입력
2014.11.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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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학생부터 여든 노인까지 "꼭 오르고 싶은 산" 열병

20대를 다 쏟아 붓고 등단한 나이 50줄의 소설가는 지금도 신춘문예 공고를 보면 가슴이 뛴다. 한 시인은 신춘문예 마감을 앞둔 이 맘 때를“김장이 끝나갈 즈음이었지, 꼭 한번 올라가 보고 싶은 산, 신춘”으로 기억했다. 문청(文靑)들이 열병을 앓는 신춘문예의 계절이 찾아왔다. 작가를 꿈꾸는 문청들은 1년 내내 이 때만을 기다려왔다.

지난 20일 소설창작 수업이 진행 중인 서울 남산도서관. 문학교육센터 강의실에 30대 초반에서 여든을 바라 보는 영원한 문청 13명이 둘러앉아 채수원(61)씨의 콩트 한 편을 해부했다. 원자력 공학자 출신인 채씨에게 소설쓰기는 죽기 전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학창시절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생기더라.” 옆에 앉은 출판사 근무 경력의 주부 송경하(64)씨는 잠결에도 머리맡 연습장을 긁적이며 좋은 문장을 찾곤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올해도 안 되면 미련을 버려야지.”

신춘문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신인공모 방식. 이름 없는 문청들이 작가로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길이고, 그래서 글 쓰는 이들에게 꿈이다. 새해 벽두 신문지면을 통해 화려하게 작가로 데뷔하는 낭만까지 갖췄다. 응모자는 평생 글을 쓰려는 젊은 작가지망생부터 회사원 주부 은퇴자 노인까지, 문학에 대한 대책 없는 순결성을 가진 이들. 출판업계가 불황이고, 문학독자는 주는 데도 응모자가 느는 문화현상의 주인공들이다. 문학에 대한 농도가 옅어졌다지만 신춘은 어느 새 나이와 세대를 뛰어 넘는 문학축제가 되어 있다. 한 문인은 “연령과 성별을 뛰어넘은 국민 백일장 같다”고 했다.

일생을 던질 각오가 된 작가 지망생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응모하는 탓에 허수도 많다. 응모작 10편 중 8편 꼴로 제대로 된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폐기된다. 1등만 있고, 2등이나 꼴찌나 별반 다르지 않은 까닭에 나이 지긋한 문청이 얼굴을 내밀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문단 미래를 걱정하는 심사위원들은 기왕이면 문학에 인생을 걸 젊은 인물을 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운 좋게 당선해도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기 쉬운 때문이다. 박주택 경희대교수는 “나이든 사람이 소녀시대처럼 노래 부른다고 어울리지 않을 뿐 더라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다. “조용필 이선희 송대관의 노래로 요즘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 글도 나이를 먹는데 기성층이 젊은 감각을 따라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영원한 문청들이 꿈을 내려놓지는 않는다. 공모 마감을 1,2주 앞두고 잔인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도서관, 아카데미, 문화센터의 문예창작교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꽤 이름 있는 문인들은 이들을 위해 유료 글방을 운영하는 데 장르별로 20~40개씩에 달한다. 문단의 문인들이 보다 반기는 일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는 작가 지망생들이 느는 것. 최근 10년 새 문창과나 국문과에서 글 공부를 한 젊은 작가들이 대거 신춘문예에 등장하고 있다. 김춘식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기본기를 갖추고 훈련된 사람들이 등단한다. 열정을 가지고 오래 써왔거나 문학 전공 후 꾸준히 써온 그런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전히 등단의 좁은 문을 통과해도 작가로 살아남기란 힘들다. 글 써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다.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 이정훈(48)씨는 지난 2년 간 시(詩)로 번 돈이 200만원 정도. “글만 써서는 굶어 죽기 딱 좋겠네”라는 그는 화물차를 몬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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