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규모’ ‘첫 청와대 앞 100m 행진’ ‘세계가 놀란 평화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42일 간 쉼 없이 달려 온 촛불의 여정에는 수많은 찬사와 기록의 수식어가 뒤따랐다. 매주 광장을 채운, 그리고 마음으로 응원한 국민 모두가 주인공이다. 특히 촛불이 꺼질 듯 위기를 겪을 때마다 불씨를 살려 낸 숨은 주역들이 있다. 이들은 집회 현장 안팎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과 재능을 다하며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비폭력, 평화집회를 일궜다.
촛불의 든든한 바람막이 ‘퇴진행동’
10월 29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일대를 환히 밝힌 촛불집회 뒤에는 시민들을 한데 묶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있다. 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 안진걸(44)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퇴진행동은 국민의 동반자이자 기획자”라고 말했다. 퇴진행동은 10월 중순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꾸렸다. 20여개 단체가 상임운영위를 맡았고, 상시 활동하는 상황실 직원과 자원봉사자도 150명에 이른다.
하지만 퇴진행동을 움직이는 힘은 오직 성난 민심이다. 주최 측은 ‘청와대 앞 100m 행진을 하자’ ‘화장실을 늘려 달라’ 등 하루 수백 개씩 쏟아지는 제안을 검토해 행사에 반영할 뿐이다. 실제 학익진 행진이나 416개 횃불처럼 시선을 사로잡은 다양한 퍼포먼스는 시민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시민단체가 평화집회를 이끈 구심점이 아니냐는 질문에 안 사무처장은 손사래를 쳤다. “퇴진행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232만명의 행동하는 양심과 5,000만 국민의 눈이 거대한 저항의 물결이 되어 탄핵안 가결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랐습니다.” 퇴진행동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그날까지 오늘도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향한다.
750만 목소리 담은 ‘하야가’
“하야~하야하야~/하야하야하야야!/꼭두각시 노릇하며/나라망친 박근혜야.” 촛불집회에 나가봤다면 한 번쯤 흥얼거렸을 이 노래. 민요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가’는 엄숙한 집회 분위기를 즐기는 투쟁으로 만든 활력소였다. 축제의 노래는 학원강사이자 민중가요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임한빈(31)씨 머리에서 나왔다. 임씨는 지난달 5일 2차 촛불집회부터 하야가를 무대에 올렸다. 1차 집회 당시 박 대통령 퇴진을 간절히 소망하는 참가자들의 얼굴이 기억에 남아 사흘 만에 현 시국에 맞게 가사를 고쳤다고 한다. 100만명이 부르는 하야가가 광장을 가득 울릴 때의 감격은 남달랐다. 임씨는 “첫 무대에서 하야가를 따라 부르는 시민들의 빛나고 결연한 모습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임씨는 박 대통령이 취임 전 병원을 다닐 때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주제곡 ‘나타나’를 ‘나가라’로 바꿔 다시 한번 주목 받았다. 다만 풍자ㆍ비판에 집중한 개사를 하다 보니 세월호 참사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못한 게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게이트가 잊혀져 가던 세월호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라며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도록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개사 곡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차벽을 평화로 뒤덮은 ‘꽃 스티커’
지난달 19일 밤 서울 종로구 사직로를 둘로 갈라놓은 경찰버스는 온통 꽃으로 뒤덮였다. 차라리 꽃담으로 부르는 게 맞을 법한 차벽 앞에서 시민들은 연신 셔터를 누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첫 선을 보인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는 촛불집회를 비폭력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참가자들은 공권력과 맞서는 대신 꽃 스티커를 붙이며 평화로운 저항을 택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43) 작가의 머리 속에 있던 꽃 스티커는 예술크라우드펀딩업체 ‘세븐픽쳐스’ 전희재(27) 대표를 만나 새로운 꽃이 됐다. “꽃 그림을 붙이면 어떻겠느냐”는 이 작가의 페이스북 글에 전 대표가 화답한 것. 전 대표는 “꽃 스티커는 ‘검열에 상관없이 목소리를 마음껏 내자’는 회사 비전과 완벽히 일치했다”고 말했다.
사흘 만에 100만원이 모였고 예술가들의 재능기부가 더해져 2만9,000장의 꽃 스티커가 경찰차벽을 수놓았다. 이후 큰 관심을 받으면서 일주일 뒤에는 떼기도 쉬운 스티커 9만2,000장과 생화 700점, 다시 일주일 뒤에는 5만장이 시민들에게 배포됐다. 비폭력이 이뤄낸 성취는 전 대표가 촛불집회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꽃 스티커에는 예술적 저항을 넘어 미래로 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회부조리가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집회의 수호자 ‘민변 감시단’
사람이 많이 모이면 갈등과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별다른 불상사 없이 진행된 7차례 촛불집회 역시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그때마다 집회현장 최전선을 누비며 폭력과 인권침해에 눈을 부릅뜬 이들이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인권침해감시단이다. 하늘색 조끼를 입은 단원들은 시민들과 경찰, 혹은 참가자들끼리 충돌하지 않고 대오가 흩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감시단을 이끄는 권영국(53) 변호사는 “이번 집회에서는 경찰도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해 수월했다”고 말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계기로 조직된 감시단은 세월호 1주기 집회, 민중총궐기 등 각종 시위현장에서 시민들의 법적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변호사 30여명은 매일 출동해 집회 시작부터 종료까지 공권력 행사의 적정성을 파헤친다. 물대포와 최루액이 익숙한 감시단에게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절제된 구호는 경이로움 자체였다. 유일한 흠이라면 법원의 결정에도 경찰이 계속 청와대 100m 앞 집회ㆍ행진을 불허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 변호사는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시민들을 연행하지 않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해 만족한다”라며 “박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항상 시민 곁에서 인권수호자를 자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의 어엿한 주역 ‘교복부대’
부모님의 만류와 학업 걱정을 뒤로 한 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교복부대’는 촛불집회의 주축으로 우뚝 섰다. 특히 최준호(18) 중고생연대 상임고문은 청소년들이 한데 뭉쳐 힘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최씨는 11일 “1차 촛불집회 때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무얼 할 수 있겠냐는 회의감이 감돌았는데 이제는 우리의 힘으로 역사를 썼다는 게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씨가 이끄는 학생단체 중고생연대에는 현재 1,300여명의 청소년이 뜻을 함께 하고 있다. 과거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학생들의 힘으로 극복해 온 역사를 잇기 위해 모인 이들이다. 최씨는 “그간 학생들이 정치 논쟁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선 청소년들이 발언을 할 때마다 시민들이 공감을 표하고 두 손을 잡아주기도 해 보람이 크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생인권운동을 해온 최씨는 촛불집회를 ‘거리의 교과서’라고 표현했다. 그는 “학생들은 여전히 두발규제와 체벌의 일상화, 과도한 학습 요구 등 각종 인권침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라며 “‘학교에서의 1년보다 광장에서의 한 달이 더욱 값지다’는 의식이 학생들 머리 속에 깊이 새겨졌다”고 말했다. 중고생연대는 곧 정식 시민단체로 거듭날 계획이다.
광장 불 밝힌 ‘세월호 고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100만 시민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고래 풍선이 떠올랐다. 길이 7m, 폭 5m의 파란색 고래 등에는 노란 종이돛단배가, 꼬리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304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세월호 고래’는 특수구조물 제작자인 김영만(55)씨 작품이다. 김씨는 바다 속 가장 든든한 포유동물인 고래가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힘껏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광장에 고래를 띄웠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석정현씨가 고래 그림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달래는 것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고래는 해가 저물고 행진이 시작되면 시민들의 든든한 길잡이가 됐다. 김씨는 고래와 연결한 줄을 어깨에 메고 고래 등의 발광다이오드(LED) 불을 켜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밝히고 있다. 김씨는 “고래를 메고 청와대 코앞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 갔을 때 차벽 앞을 묵묵히 지키며 3시간 넘게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고래 아빠의 꿈은 소박하다. “시민들이 고래를 통해 주위를 둘러보면서 ‘내가 다가가서 안아주고 함께 울어 줄 이들이 곁에 많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으면 해요."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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