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과의 친분을 앞세워 사건을 맡고 로비용으로 “양복 한 벌을 해줘야 한다”며 의뢰인에게 고액 의류 상품권 등을 뜯어낸 법관 출신 변호사가 중징계를 받았다. ‘변호사 2만명’시대를 맞아 영업 전략으로 판사들과 연고관계를 내세운 전관으로, 변호사단체는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변호사 징계위원회를 열어 부장판사 출신 한모(58ㆍ사법연수원 14기) 법무법인 S 대표 변호사에게 연고관계선전금지 위반 혐의 등으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징계위의 조사 결과, 한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상고심 민사 사건의 피고인 A씨에게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 경기고 동창이다. 잘 말해서 해결해 주겠다”며 수임료 1,5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수임계약 뒤 A씨가 변호사 선임계는 안 내느냐고 묻자 한 변호사는 “이미 다른 변호사가 선임돼 있으니 낼 필요가 없다”고 둘러대고는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 변호사법 위반이다. 한 변호사는 상고이유서를 작성하기는커녕 “대법관에게 양복 한 벌 해줘야 한다”며 양복점을 운영하는 A씨에게서 300만원짜리 의류 티켓을 받아 챙겼다.
한 변호사는 얼마 뒤 불안해하는 A씨에게 전화로 “지난주에 (대법관의 심리에 필요한 각종 연구 및 법리 검토를 하는 판사인) 재판연구관에게 사건을 보라고 얘기해놨으니 주심 대법관에게 보고돼 주말에 들여다볼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한 변호사는 이어 “내가 직접 대법관을 찾아가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대화가 있기 이틀 전인 지난해 11월 26일 이미 사건은 대법관이 심리 없이 상고를 물리치는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났다. 한 변호사는 그럼에도 다음달 3일 “(재판연구관) 김○○이랑 통화했는데 잘 챙겨주고 있다. 좀 기다려보라”며 의뢰인을 속였다. 내막을 알게 된 A씨는 변협에 진정서를 냈다.
한 변호사는 가압류 사건의 다른 의뢰인 B씨가 건네준 공탁금을 받고도 법원에 내지 않아 각하 결정을 받게 했으며, 수임료 500만원 반환 약속도 어긴 사실이 징계위에서 드러났다. 로펌 직원 임금과 퇴직금 1,100여만원도 체불했다.
그는 올해 5월에도 “판사에게 휴가비를 줘야 한다”며 의뢰인에게 1,000만원을 뜯어낸 혐의 등으로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는데 이번에 또 중징계를 받게 됐다. 그는 2013년 강간 혐의로 중형을 받은 피고인의 부모에게 “재판장이 연수원 동기”라며 수임했다가 형량만 4년 더 늘렸다. 그는 앞서 받은 징계에 불복해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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