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자전거여행2’를 펼쳐 들었다. 오랫동안 광합성을 하지 못한 종이의 향기가 눈부신 듯 알싸했다. ‘자전거여행’을 처음 만났던 때, 그가 페달을 굴러 만난 풍경들에 깊이 매료됐더랬다. 자전거가 이끄는 풍경은, 마치 깊은 밤 설악산 품에 안긴 오세암과도 같았다. 험준한 공룡릉과 용아릉, 정확히 그 한 가운데 은밀히 웅크려 있는 오세암은 밤이 되면 돌연 세상의 중심이 되어 모든 별들을 뜰로 불러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은 내려앉은 별들과 서로 일렁이며 은은한 소리를 내었다. 풍경소리는 그렇게 하늘의 별들을 찬란히 불러 모았다. 오세암에 울려 퍼진 풍경소리를 자전거가 이끌던 풍경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 근사한 행복이었다. 그 후 ‘풍경과 상처’, ‘원형의 섬 진도’, 다시 ‘문학기행1, 2’와 ‘칼의 노래’로 김훈의 자전거를 무던히도 쫓았다.
‘자전거여행2’는 전편의 자전거가 달리던 길의 연장인 양, 같은 기어와 페달을 구비하고 있었다. 목차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여주의 ‘고달사 옛터’였다. 나에게 고달사 옛터는 운주사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폐허로 기억되는 곳이다. 국보 4호, 보물 6,7,8호를 한꺼번에 품고 있는 그곳은 대단한 위상과는 달리,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논과 밭 사이 폐허인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당시엔 폐허 위에 곧 거창한 불사가 들어서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 이름을 새긴 기와로 건축기금을 모으다 보면, 옛터를 향해 곧 굴삭기가 진격할 것이었다. 우람한 사찰은 땅을 뒤집고 헤쳐 예전의 주춧돌을 파괴할 테고, 폐허의 생명력은 새 건축물로 위태로이 위협받을지 몰랐다.
책 속의 ‘고달사 옛터’는 책 밖에 풍기는 오래된 종이의 알싸한 향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고달사의 유래는 이랬다. ‘고달’이란 석공이 거대한 석조물을 쌓아 올리는 동안,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몰랐다. 온 혼을 바쳐 불사를 완성하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수행의 길을 떠났는데, 훗날 사람들은 도를 이룬 큰 스님으로 추앙하며 석조물에 그의 이름 ‘고달’을 붙였다. 가족의 아사도 모른 채 하며 지극정성으로 쌓아 올린 고달사는 이제 주춧돌만 근근이 남겨 풍화됐다. 김훈은 폐허의 풍광을 이렇게 그려낸다.
“폐허는 그 위에 세워졌던 모든 웅장하고 강고한 것들에 대한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그 잡초 더미 속에서 푸드덕거리는 풀벌레들의 가벼움으로 사람을 긴장시킨다. 폐허에서는 풀벌레가 영원하고 주춧돌은 덧없어 보인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터는 그 풀밭에 아직도 남아 있는 찬란한 석물들과 그 사이에서 번식해 뒤엉킨 풀과 벌레들로 시간이 이루어내는 폐허의 양식을 완성한다.”
작가는 주춧돌이 덧없고 풀벌레가 영원한 듯 ‘보인다’고 표현한다. ‘이다’와 ‘아니다’의 중간 즈음에 있을 ‘보인다’를 통해 옛터의 모습을 묘사했지만, 나는 유독 풀벌레에 의해 잠식된 폐허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강고한 주춧돌 마저 언젠가는 잡초더미 속 영원한 풀벌레 사이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땅 속에 가라앉는 주춧돌이 그립고도 슬프다. 그러니 나는 달려가 폐허의 땅을 다시 부드럽게 만지고 싶다. 흙과 만나는 손길은 풀벌레에게 잠식된 땅으로부터 주춧돌의 생명을 하나하나 일깨우고, 옛 석공의 삶과 의지는 그렇게 내 몸을 따라 낮고 깊은 곳으로 스며들지 몰랐다. 그리운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나지 않는 것들을 그리거나 슬퍼하지는 않는다. 주춧돌은 그리움이라는 아날로그 신호를 매개하는 경유지와도 같아서 풍화돼 사라진 옛 삶과 의지를 현세의 삶과 의지로 잇닿게 한다. 폐허의 주춧돌은 과연 어느 길의 누구에게로 이어질 것인가?
주춧돌이 땅속에 가라앉아 풍화되는 긴긴 세월 동안 봉건질서의 파탄은 새로운 의지와 규범을 탄생시켰고, 탑은 부도로, 석가여래는 중생에게로 정신의 가치는 서서히 이동했다. 나는 주춧돌로부터 사람과 진보에 대한 신뢰들을 다시 불러내고도 싶다. 언젠가 고달사 터의 주춧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도 폐허는 또 다른 폐허로 변모할 것이다. 폐허를 폐허이게 남겨두는 것. 당신의 글이 은은한 풍경소리처럼 마음속 깊이 공명한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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