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일상 등 담아 공감대 형성
편당 분량도 짧아 부담 없이 읽어
부조리 꼬집은 내용에 대리만족도
학업과 회사생활로 숨가쁜 20, 30대에게 독서는 사치에 가까운 취미다. 그런 그들도 ‘무언가를 읽고 싶다’는 활자 소비욕구는 있다.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읽는 웹소설이 젊은 층을 사로잡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5인치 남짓한 화면에서 벌어지는 서사가 우리 사회 부조리를 꼬집으며 대리만족까지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23일 웹소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연재 사이트 ‘조아라’ 소속 실탄 작가의 ‘나는 귀족이다’는 누적 조회수 5,000만 건을 넘어섰다. 이는 인터넷 소설 장르가 생겨난 이래 최고 수치로 알려졌다. 2012년 연재를 시작해 최근 826회를 맞은 소설은 초능력을 보유한 주인공들이 현실 사회에 나타난 괴수를 물리친다는 줄거리로, 얼핏 보면 기존 판타지 소설과 차이점이 없다. 그러나 이야기 곳곳에 사회 이슈가 재미있게 녹아 들어 젊은 층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아랍에미리트의 거부 ‘만수르’를 본 딴 등장인물이 약자를 위해 돈을 아낌 없이 사용하는 등 ‘착한 갑질’을 통해 상류층 특권의식을 풍자하거나, 주인공이 일본의 괴수를 물리치는 대가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받는 식이다.
이 밖에도 웹소설 상당수는 조회수 1,000만건 이상을 기록하며 직장 상사와의 갈등, 취업 준비생의 팍팍한 일상 등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2003년부터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는 독자 김모(26)씨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며 “작가들이 비교적 젊은 편이라 경험이나 생각이 비슷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도 없다”고 말했다.
웹소설은 책을 읽고 싶지만, 짬을 내기 어려운 현대인들의 틈새 시간을 파고 들었다. 회사원 강모(31)씨는 “웹소설 대부분은 편당 5,000자 분량으로, 5분이면 읽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며 “바쁜 직장인들에게 유용한 취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웹소설 이용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또는 잠들기 직전 시간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웹소설은 ‘창작의 민주화’를 불러와 대중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웹소설은 작품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문단 출신의 기성 작가들이 표현할 수 없는 소재를 다양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습관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문학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웹소설은 웹툰(온라인 만화)에 비해 콘텐츠 생산이 풍부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만화의 경우 일정 수준 그림실력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있고 제작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웹소설은 글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쉽게 창작이 가능하다. 실제로 하루에도 수천 건이 등재돼 독자들은 입맛에 맞게 양껏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김씨는 “좋아하는 작품이 있어도 통상 1주일이나 기다려야 하는 웹툰에 비해 웹소설은 짧은 주기로 작품이 공개되고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모바일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웹소설 열풍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웹소설 업계는 독자의 80%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아라 관계자는 “1990년대 PC통신으로 시작된 웹소설 시장은 최근 3년간 200억원대 시장으로 성장했는데, 이는 스마트폰 시장 확대 시기와 일치한다”며 “앞으로도 모바일 환경이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웹소설 붐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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