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文 정치인 겨냥 악성 댓글 등 공격
“특정인 배타적 지지가 패권주의로”
“가치관 공유하는 든든한 지원군”
“참여정치 확대 과정” 긍정적 시각도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0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방명록에 ‘친노(親勞) 정부 수립하여 사람 사는 세상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친노’를 ‘친 노무현’이 아닌 ‘친 노동자’로 쓴 것에 대해 친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치 팟캐스트 ‘권갑장의 정치신세계’ 공동 진행자인 권갑장씨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얼굴도 못생기고, 옷도 잘 못 입고, 남자처럼 말하는 재수 없는 X’이라는 욕설과 함께 “내일 (팟캐스트) 녹음에서 심상정 다 털어버릴 생각, 야권이고 XX이고 심상정 같은 수준 낮은 인간은 정계 은퇴시켜야 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권씨는 5분 만에 포스팅을 삭제하고 심 대표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다음날 공개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 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고 비난이 쏟아졌다. 권씨는 평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고 SNS 등에서 반문 정치인 등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며 지지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어 온 인물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안 그래도 문 전 대표 일부 팬이 ‘문빠’라고 불리며 과격하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라 파장이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16일 문 전 대표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며 여성정책 분야 대선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논란은 반복됐다. 차별금지법 입법을 요구하는 성 소수자들의 항의에 참석자들은 “나중에”를 박자에 맞춰 연호했고, 거대한 함성 속에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파묻혔다. 온라인과 SNS에서는 문 전 대표의 지지자들이 다수의 힘으로 소수자들의 입을 막았다는 비판과 정책 발표장에서의 집단 항변이 오히려 부적절했다는 반론으로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앞당겨진 대선 정국에서 정치인 팬덤의 열기가 전에 없이 뜨겁다. 그 중심에는 ‘문빠’가 있다. 대세로 떠오른 문 전 대표의 열혈 지지자들이 그 앞을 막는 이들이라면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하나의 정치현상이 됐다. 극렬한 공격성과 행동력에 “요즘 아이돌 팬클럽도 이렇게는 안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1월 초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펴낸 개헌 관련 전략보고서가 문 전 대표에 편향됐다고 비판한 김부겸 의원에게 3,000여통의 항의문자가 쏟아진 게 대표적이다. 2005년 참여정부 민정수석이었던 문 전 대표가 ‘삼성 X파일’ 특검 수사를 반대했다고 최근 폭로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에 대해서는 “후원을 끊자”는 운동이 펼쳐졌다. ‘문빠’는 분명 정치인 문재인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는 기반이지만, 동시에 맹목적 지지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문빠’는 힘인가, 독인가.
“문빠 때문에 문재인 싫다”
열정과 비하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 ‘문빠’라는 현상은 민주당과 지지자들 내에서도 종종 논란이 된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을)은 지난달 페이스북에 ‘SNS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타후보 비방과 독설이 도를 넘고 있다’로 시작하는 글을 남겼다. 그는 “일전에 문 후보 측에 이런 부작용(사실은 역효과)을 지적했더니, ‘국정원 의심’ 운운하길래 정신차리라고 한마디 한 적도 있다. 일주일 뒤에 대천인가에 모여 (팬들에게) “선플운동하자”고 하더구먼. 이게 ‘선플운동’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극성지지자를 자제시키지 못하고 (적어도 그런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우물쭈물하는 대처를 하면서 정권을 달라 할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문 전 대표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시각은 훨씬 심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지지하는 박모(44)씨는 이렇게 말한다. “문빠의 문제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거예요. 문재인 싫다고 한마디만 하면 바로 떼로 몰려들어요.” 그는 트위터에서 문 전 대표를 비판하면 지지자들이 ‘좌표찍기’에 나선다고 말했다. 특정 트위터 계정을 차단하는 이들이 많으면 트위터 본사가 계정을 정지시키는 점을 악용해 “수백명이 한꺼번에 언팔로우해 계정을 폭파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팬카페에서도 ‘문 전 대표에게 득이 안 되니 자제하자’는 글들이 종종 발견되지만 ‘남들이 더 심한데 억울하다’거나 ‘이 정도가 뭐가 문제냐’는 주장도 적지 않다. ‘문빠’에 대한 비판을 충성 팬이 없는 정치인들의 질투와 음모로 보기도 한다. 팬카페에서 회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보자.
지지자 A: “문빠 때문에 문재인이 싫다는 건 문빠 때문에 피해보는 이들의 개수작입니다. 문재인 욕할 때 지지자 모두가 참으면 욕 먹어 마땅한 걸로 여론이 굳어지게 됩니다.”
지지자 B: “문재인님의 최대 무기는 극성스런 문빠죠. 질투가 나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겁니다. 싫은 게 문 팬 때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신경 쓰지 마세요.”
지지자 C: “문재인 지지자들이 열성적인 건 사방에서 문재인 흔드니 그런 겁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역대 최강입니다. 솔직히 정치인이라면 갖고 싶은 지지층이죠. 문재인 지지율을 어떻게든 낮추려는 프레임일 뿐.”
문재인 팬들이 왜 유독 과격한지, 그들의 주장처럼 상대 진영이 만든 허구일 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력 대선 주자 5명의 팬카페와 트위터를 대상으로 의미망 분석과 관계망 분석을 실시했다.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업체 아르스프락시아가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월 9일부터 1월 말까지 문 전 대표(문사모, 문팬, 젠틀재인), 안희정 충남지사(안희정아나요), 이재명 성남시장(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 안 전 대표(안철수와 함께하는 변화와 희망),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유심초)의 팬카페 게시글 1만4,500건을 분석했다. 1월 30일~2월 7일 트위터에서 다섯 후보가 언급된 게시글 83만건이 어떤 경로로 퍼지는지도 분석했다. 팬카페는 포털사이트 댓글만큼 치열한 논쟁은 없지만 대신 지지집단 내부의 인식을 파악하는데 효과적이다.
분석 결과 문재인 팬클럽은 ‘문재인을 지키기 위한 수비형 공격’의 양상을 보였다. 문재인 팬들이 ‘선제적 공격자’가 아닌 ‘방어적 공격자’라는 것인데, 비난, 비판, 공격, 왜곡 등의 단어가 다른 주자들이 아닌 문 전 대표와 직접 연결돼, 외부의 비판과 왜곡에 대한 대응이 논의의 주를 이뤄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주된 경쟁상대로 언급되는 이 시장과 안 전 대표는 공격적 단어보다 지지율 상승ㆍ하락과 긴밀히 결부됐다. 당내 경선이나 본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경쟁자들의 지지율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예상 밖으로 공격성과 활동성이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이었다. 회원 수는 5,832명(1월 말 기준)으로 3개 문재인 팬카페 회원 총수(4만3,049명ㆍ중복집계)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게시글 수는 5,331개로 문재인 팬카페(7,606개)와 큰 차이가 없다. 탄핵 가결 이전에는 하루 게시글 수가 손가혁 쪽이 더 많았다. 게시글 수를 회원 수로 나눈 활동률은 91%에 달해 문재인 팬카페(18%)를 압도한다. 손가혁은 문 전 대표를 명시적 라이벌로 놓고 강도 높은 비난과 비판을 쏟아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언급도 많은 데다 기득권, 공격, 비판, 검증이라는 단어가 따랐고, ‘이재명’은 국민, 민심, 관심, 대통령, 지지, 당선 등이 연관돼 대조적이었다. 혁명의 손가락들은 문재인 지지자를 ‘친문독재패거리들’ ‘문베충(일베충을 빗댄 말)’으로 일컬었다.
트위터로 연결된 관계망은 이재명을 정점으로 한 조직적 위계가 뚜렷했다. 이 시장의 트윗을 직접 지지자들이 받아 순차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앙집중형’이다. 김학준 아르스프락시아 여론분석팀장은 “이 시장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높고, 지지자들의 절대적 숫자는 열세지만 온라인 조직력은 훨씬 높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지지자들이 억울해 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문 전 대표에 대한 공격이 많기 때문에 과격해 보인다는 얘기다. 김 팀장은 “문 전 대표 팬들의 수가 많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데다, 온라인을 지배하는 파워가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트위터 관계망 분석에서 문 전 대표는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후보였다. 이 시장과는 대조적으로 ‘부채꼴 확산형’의 문 전 대표 트위터 관계망은 파워 플레이어들이 다수 포진해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이들에게 확산시키는 게 가능했다. 특히 국회 탄핵소추 가결 후 팬카페 게시글이 2~3배 늘어나는 등 최근 지지활동이 크게 활성화된 것도 ‘문빠’를 수면 위로 불러왔다. ‘문빠’ 현상은 요약하자면 최근 몇 달 새 급부상한 이 시장의 충성 팬들의 집중공격과 1위 수성을 위한 문 전 대표 팬들의 맞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인 것이다.
문빠 진정한 힘이 되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빠는 죄가 없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선공이든 방어든 토론과 운동을 넘어 완력의 지경에 이른 정치행위는 지지층 바깥에서 반감이 크고, 문 전 대표에게 그 반감이 옮아갈 여지가 있다. “문자폭탄이 두려우면 빈 상자 등등 택배폭탄 맞아볼래?”라며 항의문자를 정당화하거나, 지지율이 급상승한 이 시장에 대해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려야 한다. 딱 새누리스러운 정치인”이라고 비난하는 게시글이 그렇다.
‘문자 테러 받을 처신을 일부러 한 뒤 종편에 찌르고 문자 보낸 이들을 ‘문빠’라고 덮어씌운다’고 음모론을 역설하는 데에선 피해의식마저 엿보인다. “나는 다 알고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자 민주당 내에서) 후보 갈아치우려 했던 거, (2012년) 문재인 대선 경선 때 보이콧하고 계란 던진…”같은 글을 보면 피해의식의 뿌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런 피해의식이 ‘문빠’ 현상의 한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요즘 지지율 1위라는 위치에 섰지만 팬들은 속으로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함이 있어 외부의 공격에 강하게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지지자 박씨는 이렇게 꼬집었다. “이건 분명해요. 문 전 대표가 말릴 수 있는데 그만하라는 말을 안 하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으로 이루어진 세상, 그게 패권주의인 거예요.” 김한정 의원의 지적이 이와 다르지 않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이 많은 정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수 친노 세력의 폐쇄성과 배타성 때문에 비난을 샀던 것처럼 문 전 대표도 열성 지지세력에 대한 부채감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 지지자인 자영업자 이모(53)씨는 “문빠의 문제는 문 전 대표의 문제”라며 “왜 지지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문 전 대표가 지지자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든 없든 지향해야 할 가치를 명확히 제시하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문빠’ 현상은 문 전 대표의 대선 행보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 전반에 득(得)일 수도, 독(毒)일 수도 있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정치인에게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팬들은 정치인에 대한 열성적 지지를 통해 세상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정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못도 감싸면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마음은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제시한 ‘폭민’ 처럼 폭력 같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정치평론가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현재 민주당에 ‘좌(이재명)-중도(문재인)-우(안희정)’로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조합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당 지지자라면 누가 돼도 우리 당 후보가 되면 좋다는 마음이 필요한데,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강해지면 경선 과정이 혼탁해지고 당이나 지지하는 후보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빠’는 무엇으로 작용할 것인가.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대선주자 팬카페 비교> 대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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