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파와 극우주의자의 대결로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중도신당 ‘앙마르슈’를 이끄는 정치신예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덟 번째 대통령에 올랐다. 1977년생으로 올해 만 39세인 그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연소이고, 주요국 정상 가운데서도 가장 젊다.
경력이라고는 현 사회당 정부에서 2년 정도 경제장관을 한 게 전부이고, 선출직 경험은 아예 없다.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주창하며 국회에 의석 하나 없는 신생정당을 만든 것도 불과 1년 전이다. 그런 그가 5공화국 60년 사상 처음으로 거대 양당 후보와 극우주의 돌풍을 모두 잠재우고 대통령에 오른 것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프랑스 유권자들의 열망이 그만큼 컸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아무런 정치기반도, 경험도 없는 그가 이끌 프랑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판에 새로운 대안정치의 싹을 틔웠다는 점만으로도 그의 당선 의미는 크다.
세계는 우선 그의 당선에 안도했다. 맞상대이자 극우주의 선풍을 몰고 온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은 유럽연합(EU) 탈퇴, 반 이민, 보호주의 무역 등 극단적이고 국수적인 공약으로 유럽은 물론 세계를 불안에 빠뜨렸다.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이어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를 공언한 그가 승리했다면 분열과 고립으로 상징되는 극우 포퓰리즘의 거침없는 파고에 세계는 유례없는 ‘정치 아노미’에 맞닥뜨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가 마크롱을 선택한 것은 개혁을 바라지만, 독단과 자기부정은 안 된다는 프랑스 국민의 자기 절제의 결과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성공 여하에 따라 새로운 다원주의 정치의 착근이냐, 아니면 포퓰리즘으로의 회귀냐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마크롱이 풀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경기침체, 양극화 등에 따른 극심한 분열과 패배의식을 치유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선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투표율은 1969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지역, 교육수준 등에 따라 지지후보도 극명하게 갈렸다. EU 잔류 및 유럽통합, 자유무역, 개방경제로 대표되는 그의 공약에 반감을 갖는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의 친 기업 정책이 오히려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일각에서 이번 대선을 ‘극우라는 악마를 피해 차악을 택한 선거’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는 결국 기성 정치의 수혜자인 셈이고, 결선투표에서 받은 압도적 지지 또한 순수한 지지의 결과라기보다 극우만은 안 된다는 유권자 판단에서 비롯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의 메시지는 구체제 청산이란 뜻의 ‘데가지즘(Degagisme)’이다.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가 초래한 사회 부조리는 결과적으로 양대 정당의 종언을 불렀다. 대규모 난민사태, 극단주의 테러,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한 프랑스는 중도적 개혁을 해법으로 택했다. 변화와 개혁을 외면해서는 결국 도태된다는 것이 프랑스 대선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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