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가 28일 은행업무 중단을 발표한 이후 수도인 아테네 시내 곳곳은 상당한 혼란이 빚어졌다. 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대거 몰렸고, 가게와 상점 등은 신용카드를 받는 것을 거부하면서 현금이 부족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관광을 포기하고 귀국을 서두르는 모습도 보였다. 정부가 신용ㆍ현금카드가 없는 연금 수급자를 위해 연금 지급 업무를 오후부터 정상적으로 한다고 발표하자 은행 지점들에는 노인들만 줄을 섰다.
외신에 따르면 은행업무 중단 첫날인 29일 가게와 상점 등은 평상시처럼 영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은행은 문을 닫았고 증시도 개장하지 않아 금융위기가 시작됐음을 체감케 했다. 호텔과 식당 등은 은행업무 중단이 발표된 직후 신용카드로 대금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ATM 인출 제한에 외국인 관광객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관광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은행의 ATM에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ATM 잔고가 금방 동나 외국인 관광객도 현금을 인출할 수 없는 처지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휴가를 온 스티븐 윌은 “지난 주말에 현금을 뽑으려고 ATM을 전전했다”면서 “다섯 군데의 ATM 앞에 줄을 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결국 한 푼도 인출하지 못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아테네로 신혼 여행을 온 발렌티나 로시는 “신용카드를 쓰지 못하면서 신혼여행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그리스 관광업계도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다. 현금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상당수의 관광객들이 물건을 사지 않고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아테네 플라카 지역의 한 기념품 가게 주인은 “현금을 받는 대신 값을 깎아주는데 대부분은 그냥 가버린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일부 아테네 시민들이 29일 근처 주유소와 상점을 돌며 기름과 생활용품을 사재기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스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자 사람들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하러 나선 것이다. 만일 그리스가 디폴트를 벗어나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할 경우 물건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테네의 한 시민은 워싱턴포스트에 “앞으로 그리스에 닥칠 수 있는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불안감을 털어 놓았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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