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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영란법 시행되면 우리 모임은?

입력
2016.07.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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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방지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수백만 명 저인망 걸릴 수 있어

부작용 줄이려면 시행 전 고쳐야

그날을 ‘체력 수복의 날’로 정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9월28일 말이다.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던 수도 서울을 한국군과 유엔군이 90일 만에 탈환한 ‘서울 수복의 날’을 의미 없이 빗댄 것이다. 그날부터는 저녁 술자리는 물론이고 골프장 출입도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불편할 것이다. 편법을 동원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저녁 시간엔 운동하고, 주말엔 산에 갈 친구들을 끌어 모을 생각이다. 주말마다 산밑에서 막걸리판을 벌이는 상상도 즐겁다. 그래도 취재에 꼭 필요하다면 1인당 3만원 이하 식사가 가능한 점심 때 기업인이나 공무원을 만나면 될 것이다. 이 참에 건강을 챙기는 것도 좋은 변화가 될 것이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신문사에 입사한 이래 늘 취재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배운 이후로 저녁에 아무런 만남 없이 집으로 향할 때는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일찍 집에 가면 혹시 대열에서 낙오하는 게 아닌지,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등등의 이유로 약속이 없을 때마저도 회사 주변을 맴돌았다. 술을 즐기는 탓에 직업이 핑계거리도 됐을 것이다. 그래도 출입처 사람을 만나 취중 진담을 하면서 인맥을 쌓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렇게 쌓은 인맥이 취재할 때나 회사 일을 처리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모임에 가면 화두가 김영란법이다. 법이 시행되면 언론인과 기업인, 공무원의 만남의 방식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관심거리다. 최근 있었던 고향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봤다. 골프 문제는 오히려 해결이 쉬웠다. 어떤 편법을 써도 김영란법에 저촉된다. 아무리 할인을 받아도 1인당 5만원은 넘는다. 그래서 ‘절대 불가’라는 결론이 나왔다. 저녁 먹는 건 다소 복잡하다. 호텔 식당은 물론, 소고깃집이나 횟집은 확실히 안 된다. 이런 곳에서 1인당 3만원 이하의 식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삼겹살집은 어떨까. 1인분이 1만원 수준이니 술값을 합쳐도 괜찮다. 그런데 2차로 커피 한잔은 몰라도, 맥줏집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단 먹고, 1인당 3만원이 넘어서면 추가분을 갹출하면 된다는 간명한 해법도 나왔다. 3만원 이상은 결제가 되지 않는 ‘김영란 법인카드’가 발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어쨌거나 김영란법에 직접 관련이 있다는 400만명과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이 저인망에 걸릴 위험에 처했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이러다가 자칫 ‘만인이 만인을 의심하는 사회’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다. 급기야 ‘마누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후배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우리 모임은 가능합니까?” 10명 남짓인 고향 모임에는 언론인이 많지만, 기업인 변호사 공무원도 가끔 참석한다. 기업인이 밥값을 낼 때도 있지만, 선배가 내거나 갹출도 한다. 후배의 질문을 다들 웃어넘겼지만 씁쓸함이 남았다.

김영란법 논쟁은 통일 논쟁을 닮은 구석이 있다. 대학원 시절 한 교수가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득실이 있을까를 학문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토론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무슨 소리냐 통일은 필연인데, 따지는 것 자체가 반민족적”이라고 반발했다. 이후 토론은 진전되지 않았다. 김영란법도 “무슨 소리냐, 부패를 방지하자는데”라는 한마디가 반론을 삼켜버렸다. 성매매 단속법인 ‘김강자법’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은 지금 합법적 성매매를 주장하는 인물로 변신했다. 세월이 흐르고 난 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래서 김영란법은 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이미 많은 전문가가 제시한 바 있으니, 구체적 내용을 따로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면 될 일이다.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는 법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시행하면 부작용도 그만큼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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