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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꿈꾸던 세상, 10년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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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꿈꾸던 세상, 10년 남았는데…

입력
2018.03.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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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자기만의 방’ 쓰면서

“100년후 성차별 없는 세상 기대”

버지니아 울프. 한국일보 자료사진
버지니아 울프. 한국일보 자료사진

1941년 3월 28일 산책을 나간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이스트서섹스주 루이스의 자택을 나선 그는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워 넣은 채 템즈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신은 2주 후에야 발견됐다. 그가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남긴 유서는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나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로 끝난다.버지니아 울프는 모더니즘 문학의 기수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였지만 성폭력 트라우마에서 스스로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6살 때부터 의붓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그는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갖게 됐고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일생을 불행 속에 살았다.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는 남녀차별이 권력문제라는 점을 꿰뚫고 인본주의 세상 실현을 문학적 지향점으로 삼았다.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꼽히는 그의 에세이집 ‘자기만의 방’은 1928년 케임브리지대 여자대학 두 곳에서 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수정ㆍ보완해 이듬해 발표한 작품이다.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지 불과 9년이 지난 당시 영국은, 남성에게 귀속되지 않은 여성 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성과 픽션’에서 울프는 여성의 독립을 위한 전제 조건을 성찰했다. 울프는 여성이 자유로운 창작을 하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 자기만의 방이란 일정한 돈과 영역의 확보를 의미한다. 독립된 경제 주체로서의 활동과 아내나 어머니로서가 아닌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독립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에세이 ‘여성의 직업’에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집안의 천사를 죽이라”면서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한다.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쓰면서 100년 후인 2028년쯤에는 여성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장벽이 모두 사라질 것으로 상상했다. 그때로부터 90년이 흐른 지금 울프가 바라던 대로 여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남성과 대등한 기회를 얻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금녀의 벽’이라는 개념도 무너지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돼 최근 한국으로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는 완전한 양성평등의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77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성폭력 없는 세상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그랬듯 여전히 많은 현대 여성이 오랜 시간 성폭력 트라우마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지난 1월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닷컴은 ‘미투 시대의 버지니아 울프 다시 읽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상상한 남녀평등 시대의 마감 시한까지 10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분석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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