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씨의 부검 논란을 둘러싸고 ‘유족과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라’고 법원이 명령했지만 경찰이 유족 측의 부검영장 정보공개 요구를 거부해 영장 발부 취지를 거스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경찰이 겉으로는 유족과의 협의를 영장집행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면서도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5일 백씨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 등에 따르면 경찰은 서울중앙지법이 지난달 28일 백씨의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을 발부하면서 제시한 제한 조건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전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원문이 공개된 부검영장에는 경찰이 영장을 집행할 때 “부검 실시 이전 및 진행 과정에서 부검 시기와 방법, 절차, 부검 진행 경과 등에 관해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라”며 제한을 뒀다. 유족 측에 단순히 정보만 제공할 게 아니라 영장집행과 관련한 전체 과정을 함께 논의하라는 의미다.
유족 측은 이를 근거로 영장 발부의 타당성과 법적 대응 논리를 찾기 위해 경찰에 전문(全文) 공개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수사상 비공개 이유를 들어 응하지 않고 있다. 백씨 측 한 변호인은 “법 집행 대상자의 권리가 영장에 적시됐는데도 경찰은 고루한 조직 논리에 얽매어 법원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스스로 원칙을 저버리면서 유족과 부검 협의를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부검영장 발부 뒤 유족 측에 영장집행 협의 시한을 4일로 통보했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부검영장이 발부된 날 전화 상으로 전체 내용을 다 읽어줬다”며 “영장 사본을 밝히지 않은 건 공개 조건을 명시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날 유족 측에 협의 시한을 9일로 연장하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경찰 수뇌부의 소극적 자세도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지난해 1차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백씨가 맞은 물대포 직사살수 영상을 공개하며 진위를 따져 물었다. 하지만 김정훈 서울청장은 구체적 증거 없이 “(동영상 보다) 직원들 진술을 신뢰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해 빈축을 샀다. 김 청장은 심지어 백씨가 숨지기 전까지 경과를 묻는 질문에도 “파악을 하지 못했다”며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백씨 부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경찰이 앞뒤가 맞지 않은 태도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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