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소장 자료들 보존ㆍ전승
문집 활자 새겨 넣은‘유교책판’
수집운동 통해 6만여점 모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 올려
IT 기술로 데이터베이스화 추진
청년세대 위해 유튜브에 영상도
“한복이 몇 벌 있는지요?” “어림잡아 스무 벌 가까이 됩니다.” 그렇게 탐색전은 끝났다.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이용두(64) 전 대구대 총장이 2014년 10월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장으로 취임할 당시 안동의 유림들은 에둘러 그의 내공을 떠봤다. 유교적 가풍 속에 살아온 그의 면접은 한복 숫자로 통과됐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이곳 45만점의 방대한 국학자료와 이 원장과의 만남에 딱 들어맞았다. 국학과 IT의 융합이 만들어낸 한국국학진흥원의 ‘유교책판’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한국의 편액’은 올해 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은 삼국유사 목판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올해로 개원 20주년을 맞은 한국국학진흥원 이용두 원장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이 9회 종가포럼을 열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종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해마다 종가포럼에서는 종부와 불천위(不遷位ㆍ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 중 제사를 영구히 드릴 수 있도록 허락된 신위), 종손, 가훈 등을 주제로 소중한 전통문화를 발굴했다. 종가문화를 미래로 이어가기 위해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등 문화브랜드 육성방안을 찾고 있다. 언뜻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지만 현대인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다. 결국 돌아보게 될 뿌리 같은 것이다.”
-경주 진도 5.8지진 후 한국국학진흥원의 중요 유산 보호를 위한 내진설비 등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연한 지적이다. 훼손 위기에 있는 민간기록유산을 수집, 보존하는 진흥원은 2006년 수장 공간을 건립한 후 비상시 안동민속박물관과 의성조문국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의 수장고를 공동 이용할 수 있도록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내진설계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빠른 시일 내에 강진에도 대비할 수 있는 수장공간을 보강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유교책판은 무엇인가.
“유교책판은 문집을 인쇄하기 위해 일정한 규격의 나무에 활자를 새겨 넣은 판이다. 선비들이 유학적 이상사회를 추구한 대목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문집으로 발간됐다는 이유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으나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을 통해 308곳으로부터 기탁받은 718종 6만4,226점의 유교책판을 모았더니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 12번째, 경북 최초의 세계기록유산이다. 집에 보관됐다면 가보에 그쳤을 유교책판이 한국국학진흥원을 통해 세계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의 편액도 지난 5월 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으로 선정됐다.
“편액은 건물 간판이다. 2∼4자에 유학적 이상과 건물 용도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편액은 특성상 높은 곳에 걸어두기 때문에 당대 이름난 서예가들이 글씨를 쓰고 판각에 뛰어난 각수가 제작, 미학적 가치가 높다. 유교책판 후속사업으로 편액에 주목, 550점을 아ㆍ태기록유산에 올리게 됐다.”
-삼국유사 목판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고대 정신문화의 가장 중요한 저작물인 삼국유사는 인쇄본만 있고 목판은 찾을 수 없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인각사 소재지인 군위군과 경북도, 진흥원이 손잡고 복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삼국유사 목판사업이 마무리되면 경북은 전통기록문화의 메카로 주목 받게 될 것이다.”
-유학은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이 있다. 청년층을 향한 접근법이 있나.
“그래서 국학에 IT를 접목하고 있다. 청년세대가 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20분짜리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청비이공 선비열전’을 검색하면 된다. 나중에는 이 영상물을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또 지난달에는 진흥원에서 이틀 동안 ‘청년선비 고전읽기 캠프’도 열었고, 9월에는 서울 교보컨벤션홀에서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선비정신 포럼과 대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국내 국학 관련 연구기관은 몇 곳이고 어떻게 차별화되나.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고전번역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이 한국국학진흥원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중 왕실 설립 장서각 자료를 소장, 연구하고 한국학대학원을 운영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가장 흡사하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민간 소장 기록자료를 보존, 전승하며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차별화된다.”
-컴퓨터와 정보산업을 전공한 IT전문 교수가 2년여 간 한국국학진흥원을 꾸려왔다.
“걱정한 분도 많았으나 시기가 딱 맞았다. 행정관료 출신의 전임 원장들이 진흥원의 규모와 업무를 넓히는 역할을 했으나 45만점에 이르는 방대한 국학자료가 제대로 관리되지는 않았다. 정보기술을 접목해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IT 전문인력이 유산을 착실하게 관리하고 있다.”
-올해로 한국국학진흥원 개원 20주년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도난 사건에서 보듯 국보급 가치를 가진 민간 소장 기록자료들이 국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청년기에 접어든 진흥원은 우선 민간 소장 기록자료 수집 보존작업을 확대하고 테마 별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할 계획이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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