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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부끄러움의 계산 방식

입력
2016.02.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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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명절 연휴가 지났다. 연휴 앞뒤로 두 번 문상 갈 일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찾았던 병원의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기도 했을 테다. 생사의 일은 하염없이 진행된다. 이럴 때 명절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마련해둔 특별한 기림과 중단의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도, 덧없게도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처럼 음력으로 설을 쇠는 대만에서는 춘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순식간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지난달 4차 핵실험에 이어 설 전날 발사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은 남북 관계를 극도로 경색시켰고 정부는 개성공단의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 조치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당장 짐을 싸서 철수하게 된 개성공단 입주업체들과 거기서 일하는 남북 노동자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겠다. 지금의 경색(폐색이 더 맞는 말일 테고, 그나마 개성공단이 거의 유일한 숨통이지 않았나) 국면이 쉬 풀릴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명절이건 말건 세상은 역시 제 갈 길을 가는 것인가. 질주의 끝은 천길 벼랑 같은데 ‘에비에비’ 소리를 내는 이들은 정작 곶감 팔 궁리뿐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당장의 하루가 벼랑인 사람들은 점점 더 마음을 닫아걸게 되는 듯하다. 지금 정치가 소통과 신뢰, 이해세력의 대변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일이지만, 그런 한계 안에서라도 나름 정확한 사실과 정보에 근거한 최소한의 위기 대비와 관리가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즈음 여러 사태에서 우리가 거듭 확인하는 것은 허둥지둥 그냥 무능한 모습이며, 그럴수록 ‘단호한’과 같은 진부한 수사를 거느린 강경 구호가 정책의 이름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들 자조적으로 조금씩 되뇌기 시작한 ‘각자도생’은 점점 유일한 삶의 방책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이 큰 틀에서만 우리의 삶을 옹색하고 궁핍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각자도생’은 결국 마음을 닫아거는 일이다. 조금씩 그러더라도, 그 조금씩만큼 우리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가난해진다. 우리 마음의 계산서에는 자꾸 ‘부끄러움’의 항목이 늘어간다. 그것은 또한 ‘부끄러움’의 능력을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기기만을 의식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의 출발일 테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살아남은 자의 슬픔’)고 아프게 고백한 브레히트의 널리 알려진 시를 덧붙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의 안착과 발전은 부끄러움을 더는 일이다. 그것은 얼마간 형식적인 수준에서 그러하겠지만, 그것이 형식적이라는 점은 우리의 짐작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인의 자유의 공간에 대한 존중, 타자에 대한 개입의 적절한 중단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양보할 수 없는 미덕이기 때문이다. 진리나 정의를 독점한 듯, 타인들의 삶을 규정하고 재단하는 일은 정치의 타락과 무능이 불러온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병폐일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것 같다. 최근 읽은 김광규의 시는 ‘부끄러움’에 대한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계산의 방식을 보여준다. 온갖 부끄러움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그만큼 ‘나의 부끄러움’은 가려지려나. 시인은 답한다. “아니다/이제는 그가 알고 있던 몫까지/나 혼자 간직하게 되었다/내 몫의 부끄러움만 오히려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부끄러운 계산’)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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