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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국민연금, 복지투자를 허하라

입력
2016.02.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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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 때 일이 기억난다. 초미의 관심사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2배(약 20만원)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였다. 그러던 중 기초연금에 필요한 1년 예산 7조 중 2조원가량을 국민연금에서 충당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후폭풍은 거셌다. 연금 적립금에서 빼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 거둬들이는 보험료에서 8% 정도를 전용하겠다는 방안이었지만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노후 준비 종자돈을 보험료도 내지 않은 노인들에게 쓰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인수위안이 실제로 정책이 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던 젊은 동료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런 반발 때문에 당시 국민연금의 기초연금 전용방안은 유야무야됐지만, 요즘 다시 국민연금의 용처를 둔 논쟁이 벌어지려는 참이다. 정치권이 앞다퉈 국민연금(기금)을 복지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2일 토론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일부로 채권을 사들여 임대주택ㆍ국공립어린이집ㆍ공공병원을 짓겠다는 총선공약을 내놨고, 국민의당은 11일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만 35세 이하를 위한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컴백홈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타깃은 청년층이다. 국민연금으로 청년세대의 주거ㆍ보육 문제를 해결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민감한 의제라 양당은 안정적 수익을 담보하겠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국민들이 고스란히 받아도 모자라는 돈이니 국민연금에 손을 대지 말라’ ‘이러나저러나 결국 국가부채만 늘리는 결과가 될 거다’라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국민들의 심정이 일견 이해가 간다. 제도 도입 30년도 안 돼 두 차례(1999년, 2007년)나 연금액을 대폭 깎았고, 적립금 고갈시 국가가 지급을 약속한 공무원ㆍ군인ㆍ사학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가지급 명문화’를 한사코 거부하기 때문이기도 할 터다.

그렇다 해도 국민연금을 복지투자에 쓰자는 요즘 정치권의 구상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앞으로 30년은 지나야 현실문제가 될 연기금 고갈(2046년 적립금 2,561조원 도달 후 감소)을 대비하기 위해 국가 예산의 1.3배나 되는 500조원대의 적립금을 쌓고도 금융투자에만 올인하는 기금운용방식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연못(국내금융시장)’ 속의 ‘고래(국민연금기금)’가 처치 곤란할 정도로 커지기 전에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은 차치하고 연금투자를 통한 사회복지인프라 구축이 국민연금제도의 지속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주거ㆍ보육 투자로 출산율이 높아져야 노인들을 부양할 근로 인구를 유지할 수 있고, 연금제도의 지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미 ‘현재 1.2명 수준인 합계 출산율을 1.8명으로 높일 경우,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연금지급 연령을 늦추지 않고도 기금고갈을 막을 수 있다’(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한 해 연금기금의 5%를 투자해 19만명의 신생아가 더 태어날 경우 연금제도 지속이 가능하다’(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관건은 연금을 낼 날은 많이 남았고, 받을 날은 먼 젊은층의 막연한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까 여부다. 정부가 막연히 ‘연금고갈론’을 증폭시켜, 인수위 시절처럼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켜서는 안된다. 급격한 증세는 불가능하고, 인구감소는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의 주거와 보육문제의 해결 방도로 국민연금 투자를 수용하면 어떨까. 누리과정 예산 2조원을 누가 분담할지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몇달째 옥신각신하는 요즘 풍경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왕구 사회부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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