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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58)선배 코미디언들과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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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58)선배 코미디언들과 술

입력
2002.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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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월드컵 개막식을 보러 경기장에 갔을 때 하일성(河日成) KBS야구해설위원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좋아하시는 술도 못하시고, 답답하시겠어요.” 그도 이날 나처럼 보건복지부 장관의 초청으로 경기장에 왔던 터였다.

나는 “술 그만 해”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아직도 술 마시는 것을 무슨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정말 큰 일이다.

내가 암에 걸린 것은 물론 담배 때문이지만 더 큰 원인은 술이다. 나뿐만 아니라 술 좋아하던 선배 코미디언 중에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시명(朴時明) 서영춘(徐永春) 이기동(李起東) 양 훈(楊 薰) 양석천(梁錫天)…. 송 해(宋 海) 선배만 빼놓고는 다 돌아가셨다.

선배 코미디언들은 모두 술과 관련한 일화가 하나씩 있다. 오늘과 내일은 술에 얽힌 그분들과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선배들의 일화는 내가 데뷔하기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1970년대 연예계의 단면일 수도 있겠고, 술 좋아하다 큰 코 다친 술꾼들의 경험담일 수도 있겠다.

먼저 박시명 선배. 70년대 초반 송 해 선배와 라디오에서 유명한 콤비로 활약하던 때의 일이다. 박 선배는 당시 경기 안양시의 한 야간업소에 출연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업소 사장과 술 한 잔 거나하게 걸친 어느날 새벽 여자를 한 명 소개받았다.

그냥 근처에서 같이 지내면 될 것을 굳이 서울의 호텔로 가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오토바이 뒤에 여자를 태우고 말이다.

박 선배는 겨우 서울의 한 호텔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뒷좌석을 보니 출발할 때만 해도 앉아있던 여자가 없는 것이 아닌가.

중간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다음날 경찰이 박 선배 집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경찰관이 “어제 밤에 여자를 오토바이에 태우셨죠? 그 분이 지금 중상입니다. 같이 가시죠”라고 말했다.

아내 앞에서 말이다. 박 선배는 이후 아내 몰래 치료비를 물어주느라 엄청 고생했다.

서영춘 선배도 술이라면 결코 몸을 사리지 않는 양반이었다. 3ㆍ1고가도로가 막 완공됐을 무렵 서 선배는 서울 이문동에 살고 있었는데,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가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택시기사가 서 선배의 롤렉스 시계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시계가 아주 멋있습니다. 저는 언제 그런 시계를 차볼 수 있을까요?”

후배들 챙겨주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서 선배는 “지금 차 봐”라고 말하고 그 비싼 롤렉스 시계를 벗어준 모양이었다.

문제는 다음날 깨어나서 지난 밤 일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이었다. 술집이고 집이고 난리가 났다.

다행히 택시기사가 착한 사람이어서 그 시계를 돌려줬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송 해 선배에게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술을 진창 먹고 술집 아가씨와 호텔을 간다는 것이 그만 자기 집으로 간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자신의 단독주택 앞에 선 송 선배가 문을 열고 나온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이, 아주머니. 방 하나 주소.” 다행히 술집 아가씨가 눈치가 있어 “송 선생님이 너무 취하셔서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정신이 깬 송 선배. 식사를 하는데 낯선 여자가 밥상 앞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통행금지 때문에 아내가 그 아가씨를 자기 방에서 재워줬던 것이다.

“저 여자, 누구야?”라는 송 선배 질문에 “먼 친척 조카에요”라는 형수의 답변. 술꾼들의 황당한 이야기는 정말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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