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짜릿한 승리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2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상대는 북한이었고, 팽팽한 승부를 가르기엔 90분이 부족했다. 연장전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도 좀처럼 승부의 저울은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다.
모두가 승부차기를 떠올리던 연장 후반 추가시간, 기적 같은 골이 터졌다. 북한 수비수가 골 라인 상에서 가까스로 걷어낸 공을 이어 받은 임창우(22·대전시티즌)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을 성공시켰다. 임창우의 이 골로 한국 남자 축구는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28년 만에 금메달을 차지했다.
●임창우로 시작해 임창우로 끝났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 발표 당시,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임창우의 발탁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광종 감독은 15세 대표팀 때부터 지켜 봐 온 임창우의 능력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최종 명단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임창우는 14일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조별예선 첫 경기부터 진가를 발휘하며 이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상대의 밀집수비에 꽉 막혀 전전긍긍하던 전반 26분 정확한 헤딩 슛으로 대회 첫 골을 성공시켰다.
첫 골 이후에도 임창우는 매 경기 활발한 측면 침투, 순도 높은 크로스와 슈팅으로 밀집수비로 일관하던 상대팀들의 문을 두드렸다. 북한과의 결승골 역시 마지막 순간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과 정확한 위치 선정, 침착함이 어우러진 완벽한 골이었다.
하지만 임창우 스스로가 가장 만족한 성과는 말레이시아전 결승골도, 금메달 확정 골도 아닌 '무실점 우승'였다.
첫 경기부터 득점을 했지만, 임창우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임창우는 결승을 포함한 7경기에서 탄탄한 수비력으로 '무실점 우승'이라는 대기록 완성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면서 이번 대회를 '임창우 잔치'로 만들어 버렸다.
●임창우의 맹활약, K리그를 춤추게 하다
임창우에게 2014년은 특별하다. 앞서 언급됐듯 임창우는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유일한 K리그 챌린지 소속 선수다. 원 소속팀 울산 현대에서 이번 한 시즌 동안 임대돼 왔다. 그가 K리그 챌린지를 택한 이유는 '성공'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였다.
15세, 17세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유망주'로 주목 받았던 임창우는 2010년 K리그 클래식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하지만 국가대표 측면 수비수 이용의 그늘에 가려 4시즌 동안 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 청소년 대표 때 함께 활약했던 동료들은 무사히 프로무대에 안착했다. 남태희(23?레퀴야)는 성인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이른 군 입대를 생각할 때 즈음 대전에서 임대 제의가 왔다. 자존심만 접으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결론적으로 임창우의 대전 이적은 옳았다. 대전은 임창우의 든든한 수비 아래 17승 8무 4패를 기록하며 벌써부터 K리그 클래식 승격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대전 임대를 택하지 않았다면 이광종 감독으로서도 아시안게임 대표 발탁을 주저했을 게 뻔했다.
임창우의 활약을 지켜보는 원 소속팀 울산 역시 흐뭇한 표정이다. 대전에서 뛰며 경기력 회복과 자신감을 얻었고, 여기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문제도 해결됐다. 이번 시즌 후 울산으로 복귀 한다면 군 입대를 바라보고 있는 이용의 빈자리도 완벽히 메울 수 있게 됐다. 임창우가 택한 '대전 임대'라는 젊은 날의 모험은 결국 모두에게 성공이란 달콤한 결과로 돌아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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