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가격ㆍ점유율 등 공유 시 담합’ 명시 추진
법원, 정보교환을 증거로 인정 안 하는 판결 잇달아
EU 등 세계적 추세도 ‘정보 교환=담합’ 인정 경향
업계 “친목ㆍ단순 교류도 죄가 되나” 반발 목소리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들이 서로 주고받는 정보 교환까지 담합의 핵심 증거로 활용하기 위한 법 개정에 나서자, 업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가격 정보 등을 교환하는 행위 자체를 담합의 증거로 보겠다는 것인데, 기업들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나 일상적인 정보 공유 자체를 옥죄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정보교환은 담합 증거” 법에 명시
4일 공정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담합에 대한 판단 근거를 규정한 공정거래법 제19조5항을 개정하기 위한 내부 검토 및 용역에 최근 착수했다. 이 법조항은 담합의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업체끼리 접촉한 관련 정황이 있고, 담합의 개연성이 높다면 담합으로 간주하고 있다.
공정위의 계획은 이 조항을 보다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업체 간에 ▦가격 ▦판매량 ▦시장점유율 등 특정 정보의 공유 사실만 적발되면, 곧바로 담합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를 법에 명시하겠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법 개정에 나선 이유는 최근 유난히 공정위 단속에 엄격해진 법원 판례를 의식해서다. 공정위가 기업 간 정보교환 행위를 근거로 담합이란 결론을 내리고 과징금 처분을 내렸지만, 상급심인 법원이 “직접적 증거가 없다”며 잇달아 공정위 패소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법원은 농심 등 라면업체 4곳의 담합 사건에서 “가격 인상에 관한 정보는 교환했지만 그 밖에 다른 담합의 증거는 없다”며 라면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에는 서울고법이 비슷한 이유로 경인운하 사업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은 SK건설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법원 판례가 깐깐해지다 보니 공정위 스스로도 정보 교환 행위의 담합 효력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최근 은행들의 양도성예금증서(CD) 담합 사건에서 사무처의 판단을 뒤집고 사실상 무혐의 처분(심의절차 종료)을 내렸는데, 그 때도 “금리를 어떻게 할 겁니까” 등의 메신저 대화록에 대해 전원회의와 사무처의 판단이 엇갈렸다.
만만치 않은 업계ㆍ정치권 반발
공정위와 법원의 판단 차이는 정보 교환 행위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다. 공정위는 정보 교환을 담합행위의 ‘결과’로 보는 반면, 법원은 담합 전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 교환 행위 자체를 담합 증거로 법에 명시한다면, 1심(공정위)과 상급심(고법ㆍ대법원) 사이의 판단이 달라지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공정위 생각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담합 관계자들이 법원이 요구하는 만큼의 명확한 증거를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최근의 국제적 추세를 봐도 담합 가능성이 충분한 정보 교환은 담합 증거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연합(EU)에서는 정보 교환만해도 담합으로 인정하고 미국은 정보교환을 중요한 입증 근거로 활용하는 등 선진국에서는 증거가 남지 않는 ‘묵시적 담합’을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정보 교환=담합’의 등식이 법조문에 박힌다면, 일상 업무도 얼마든지 불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예컨대 여러 회사가 공동으로 통계를 모아 활용하는 보험업계의 보험요율 산정도 처벌 근거가 될 수 있다.?동종 업계의 모임에서 오간 자잘한 정보나,?사적인 정보 교환도 공정위 조사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우려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끼리의 출혈경쟁을 막기 위한 순수한 정보 교환까지 막아 버리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야당에서는 “법을 고칠 게 아니라 공정위 조사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남상욱 기자?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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