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A 규정상 통보의무 없고
안전하게 멸균 처리” 주장
한미 ‘샘플 반입 통보’ 등
SOFA 합의권고안 채택 불구
강제성 없어 실효성 의문
주한미군이 2009년부터 16차례나 탄저균 샘플을 국내에 반입하고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페스트균 샘플을 올해 처음 들여온 사실도 확인됐다.
한미 합동실무단은 17일 용산 미군기지에서 이 같은 내용의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5월 미 정부가 “(일부 균체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샘플이 오산기지에 배송됐다”고 우리측에 통보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뒤 양측이 합동 조사한 결과다.
합동실무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용산기지에서 15차례 탄저균 샘플 반입과 실험, 교육훈련이 이뤄졌다. 인체에 치명적인 탄저균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공공연하게 다뤄졌는데도 우리 정부는 지난 6년 동안 이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올해에는 지난 4월 탄저균과 함께 페스트균 샘플이 각 1㎖씩 오산기지로 발송됐다.
미군은 이에 대해 북한 등의 생물학 무기 위협에 대비한 방어능력 향상을 위해 독일, 일본, 호주 등 미군 주둔 동맹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피터(JUPITR)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실무단은 “샘플은 모두 실험이 끝난 뒤 멸균 비닐팩에 넣어 안전하게 고압 멸균 처리됐다”며 “현행 SOFA에는 사균화된 검사용 샘플의 반입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그 동안 우리 정부에게 통보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한미군 측 감염 의심자 22명에 대한 검사 결과에서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실무단은 덧붙였다.
한미 양국은 사균(死菌)화된 샘플이어서 감염이 없고 실험 후 모두 폐기처분 했다고 밝혔지만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군 당국은 특히 공식 발표 이전까지 “탄저균의 국내 반입은 올해가 처음”이라는 입장을 밝혀 거짓 해명 논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조사가 대부분 미측 자료에 의존한 데다 유사 사례가 얼마나 더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한미 양측은 조사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도 과거 15차례 용산기지로 들여온 탄저균 샘플의 양이 얼마인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한미는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균화된 샘플의 경우에도 반입 내역을 우리 정부가 알 수 있도록 통보하고, 일방의 요청에 따라 합동검사와 공동평가를 실시하는 내용의 합의권고안을 이날 SOFA 합동위원회에서 채택했다. 권고안은 SOFA의 부속문서에 반영돼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합의권고안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강제사항이 아니어서 상호간의 선의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또 SOFA의 본 규정보다 하위문서에 추가된 내용인 만큼 실제 얼마나 효력을 가질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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