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말벌ㆍ진드기 많다는데 안 가면 안돼요?”…세대간 ‘벌초 전쟁’

알림

“말벌ㆍ진드기 많다는데 안 가면 안돼요?”…세대간 ‘벌초 전쟁’

입력
2017.10.04 11:00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6개월짜리 아들이 있는 직장인 서모(34)씨는 2주 전 시아버지가 그 다음주로 예정돼 있던 벌초에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한 이후 고민이 깊어졌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들에게 진드기 같은 벌레가 많은 묘소로 데려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남편을 통해 시아버지에게 거절의 뜻을 전했지만 곧 “유난 떤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서씨는 “시부모님은 애들이 벌에도 쏘여봐야 제대로 큰다고 하는데, 직접 아이를 키우는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면서 “벌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앞으로도 시댁 벌초에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추석 기간 벌초와 성묘를 두고 가족 안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 세대는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며 참여를 종용하고, 자식 세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산소에 가기를 꺼리는 식이다. 과거 벌초를 책임지던 세대가 고령화되고, 가족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추석 전 자주 벌어지는 벌이나 진드기로 인한 사고는 젊은 세대가 벌초를 꺼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올해만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걸려 사망한 사람이 31명에 달할 정도다. 지난달 24일 벌초에 참여했다가 수십 마리 모기는 물론 벌에도 쏘였다는 장모(36)씨는 “하루 쉬는 주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온몸에 빨간 반점과 병만 얻었다”고 불평했다. 이에 부모 세대는 내심 서운한 기색을 내비친다. 이수길(70)씨는 “예전에도 다 했던 일인데 고작 벌레 때문에 그러냐”면서 “젊은 애들이 제 몸만 챙길 줄 안다”고 했다.

매장 문화가 사라져 가면서 벌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낮아지는 것도 갈등에 한 몫 한다. 지난해 ‘이장’ 고민을 하게 됐다는 직장인 최현민(30)씨는 “지금 아버지가 챙기는 묘만 해도 조부모, 증조부모에 고조부모까지 있더라”면서 “내 세대에서는 벌초나 성묘를 안 할 거기 때문에 언젠가 묘를 이장해 없애버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와 달리 60대 이상 부모 세대에서는 전통대로 벌초와 성묘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조상들에게 인사 올리는 김에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인 건데, 왜 나쁘게만 보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아예 업체에 돈을 주고 ‘벌초 대행’을 시키는 가족들도 많다. 고향이 충북 옥천군인 김모(31)씨는 올해 8월 한 벌초대행 업체에게 10만원을 주고 조상 묘 벌초를 부탁했다. 김씨는 “직접 가기는 싫고, 벌초할 사람은 없기 때문에 서비스를 신청했다”며 “모였다가 괜히 발생하는 가족간 싸움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귀띔했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나간 벌초 대행 서비스는 3만 건이 넘으며, 매년 10%가량 증가하는 추세다. 산림조합 관계자는 “주로 젊은 세대가 신청을 해온다”면서 “농촌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