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자 위주 한국 병원문화
가족 간호 전염위험 노출
환자 중심 일본 병원 문화 배워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가 기어코 100명을 넘어 감염 2위 국가가 됐다. 정부 당국의 안이한 초기 대응, 감염자 관리 부실이 이번 사태의 주범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책임을 조금이라도 감쌀 이유는 없다. 다만 이제 나올 진단과 처방은 웬만큼 다 나온 만큼, 그 동안 짚지 않았던 다른 얘기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사태는 감염 진원지가 병원이고, 가족 간병인이나 병문안 온 면회객을 통해 외부로 확산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제2차, 3차 감염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병원 문화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 참에 이 대목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병원문화는 철저하게 문병인 위주다. 문병객이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들이 닥치는 일이 일상적이다. 한국식 사회생활을 반영하는 체면치레용, 혹은 눈도장용 문병도 적지 않다. 환자로서는 잠을 청하거나 쉬고 싶을 때도 차마 찾아온 이를 거절하기는 어렵다. 양측 모두에게 고역인 셈이다. 시간을 정해 환자 면회를 허용하는 병원도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다. 자칫 ‘야박한 병원’으로 낙인 찍혔다가는 영업에 지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환자와 병실을 늘상 공유하는 문화도 그렇다. 가족들은 보통 24시간 환자의 침상 주위에서 맴돈다. 때로는 간이 침상에서 쪽잠을 청하고, 심지어 수액이나 침대 커튼을 직접 가는 등 간호사 보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따금 환자가 진료를 받는 틈을 타 가족 중 한 명이 침상을 차지하는 일도 예사다. 우리로선 누구나 당연시하는 문화다.
도쿄 특파원 시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일본의 병원문화를 경험했다. 일본의 병원은 일단 환자와의 면회부터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한번은 지인의 병문안을 가려 병원에 전화로 위치를 물었다. 가족 아닌 문병객에게는 환자와 면회가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고 사전에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가서도 병실에는 들어갈 수 없고, 대신 병원 내 지정공간에서 환자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철저히 환자 배려가 우선이었다. 결국 환자에게 번거로운 사정을 전화로 알리고, 퇴원 후에 보자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환자도 반기는 듯 했다. 심지어 야간에는 환자 가족도 병실에 남아있을 수 없다. 대신 병원의 관리를 신뢰해선지 가족이나 환자의 불만은 별로 없어 보였다.
또 한번은 아이가 고열과 기침증세로 병원에서 독감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마스크로 중무장한 의사가 아이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순간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렸나” 싶어 더럭 겁이 났다. 헌데 의사의 입에서 나온 진단은 “A형 독감”이었다. 그는 “모든 가족이 당장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이와 같은 수건을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고작 사흘치 약 처방전을 써주면서도 성분과 용법에 대한 설명을 20분간 이어갔다. 부모까지 마스크 쓰고 간호를 하는 것이 아이한테는 매정하다 싶어 지시를 무시했다. 결국 가족 모두가 독감에 걸려 고생했다. 그제서야 매년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감염 방지를 위한 의사의 지시가 유별난 게 아니었음을 이해했다.
이번 메르스 감염 대부분이 병원 내에서 이뤄졌고, 이중 상당수가 환자 가족 혹은 면회객을 통한 감염으로 판명됐다. 말하자면 한국의 메르스 사태는 일본식 병원문화였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환자의 입장과 감염 가능성을 전혀 고려치 않는 막무가내식 간병과 면회가 어떤 경우엔 지극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게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의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식 병원문화가 감염을 막는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사람 사이 인정과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정서에서는 무조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해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식 병원문화의 불합리성과 위험성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만한 가치는 있다.
한창만 논설위원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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