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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장애 학생 시설은 최고"라는 총장님…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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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장애 학생 시설은 최고"라는 총장님…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입력
2015.05.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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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1년 3월 서강대 교수 4명은 이종욱 당시 총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들은 지체장애 1급인 심리학과 신입생 B양이 수강하는 과목의 교수들이었다. 총장은 편지에 “B양은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으며 팔에 힘이 부족하고, 왼손만 약간 사용이 가능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정도의 장애인데 수업에 대필자가 동석할 예정입니다”라고 썼다. 편지를 읽은 교수들은 학기 동안 B양에게 공부하는 데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물었고, 중간ㆍ기말고사 때는 시험 시간을 연장해 주며 배려했다.

서강대는 지금도 장애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의 담당 교수들에게 총장 명의로 편지를 보내고, 서강대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매년 장애 학생과 간담회를 열어 불편한 점과 요구 사항을 경청한다. 이 때 총장 명의의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한 동의도 받는다. 자신의 장애를 알리고 싶지 않거나,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공부하길 원하는 장애 학생들을 위한 배려다.

서강대의 사례는 장애 학생들을 만나 20분 만에 자리를 뜬 서울 명문 사립 A대 총장(본보 7일자 9면)과 대비된다. 매년 간담회를 갖는 서강대와 달리 장애 학생들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2년 만에 간담회를 마련한 A대 총장은 10여분 지각했음에도 사과 조차 없었고, 간담회 동안 핸드폰을 보거나 “장애 학생에 대한 우리 대학의 시설은 최고 수준”이라는 말만 늘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A대 총장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A대는 지난해 장애 학생 선발, 장애 시설ㆍ설비 확충 등을 평가하는 교육부의 ‘장애대학생 교육복지 지원 실태평가’에서 최우수 대학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좋은 시설 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A대 총장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이라고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지요. 다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는데도, 그런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그 사회의 인권 감수성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A대 관계자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면 다른 대학들의 사정은 불보듯 뻔하다.

매년 졸업ㆍ입학 시즌이 되면 각 대학들에선 역경을 이겨낸 장애 학생들의 성공 스토리가 감동적인 미담으로 포장돼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공부를 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한 대학이라면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순 없겠다. 장애 학생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려 불편함 없이 공부할 수 있는 대학 캠퍼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하드웨어(좋은 시설)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교직원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 감수성)라고 생각한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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