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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등록 : 2016.12.16 14:51

[장정일 칼럼]진짜 마지막 한잔

등록 : 2016.12.16 14:51

조금만 읽고 자려다가, 밤새도록 다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정승환의 ‘한 잔만 더 마실게요’(나무연필, 2016)가 그랬다.

청소년 시절부터 로큰롤을 좋아했던 지은이는 대학 졸업 후 영어학원 무역회사 컴퓨터회사 등을 전전하다가, 종로 2가에 열다섯 평 크기에 테이블 다섯 개가 들어가는 ‘LP 바’를 차렸다. 이 책은 17년 동안 술을 팔고 레코드를 틀었던 지은이의 술집 운영기이자, 음악과 술을 떼어 놓을 줄 모르는 단골들의 이야기다. 미리 얘기하지만, 여기에 낭만은 없다.

어떤 장사든 장사는 단골을 보고 한다. 그런데 단골 만들기가 쉽지 않다, 허다한 동종 업소를 마다한 손님이 내가 차린 가게의 상호를 기억하고 찾아오게 만들려면, 최소한 같은 장소에서 3년 이상 장사를 해야 한다. 그동안은 현상 유지가 고작이다. 그 사이에 자영업자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매달 돌아오는 월세 걱정이다. 술집 주인이 월급쟁이보다 좋은 단 한 가지는, 새벽같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느지막한 오후 일곱 시에 가게 문을 열고 새벽 다섯 시에 닫는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은 정상적인 인간관계와 건강을 파탄 낸다.

“새벽 5시에 문을 닫고 집에 도착해서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 점심때까지는 컴컴한 반지하 단칸방에 누워 아침을 모르고 지냈다. 어쩌다 손님이 많아 담배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시면 다음 날 일어날 때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눈을 뜨고 나서도 오후 내내 낮잠을 자거나 티브이를 틀어놓고 멍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너무 게을러져서 밥 먹는 것도 귀찮고, 누워서 빈둥거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연중무휴로 일하며 월세를 걱정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누굴 만날 여유가 없다. 그녀는 내가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손님을 상대로 술을 파는 일은 쉽지 않다. “로큰롤의 세계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무례했다. 인문학 서적에 등장하는 록의 저항성이나 폭발성 같은 말들을 술집에 적용하면 완전히 해석이 달라진다. 술 취한 록의 저항성은 아무것이나 대상이 정해지면 폭발한다.” 먹고사는 일에는 낭만이 없다. 손님들이 화장실에 게워 놓은 토사물을 욕하며 치우는 일은 술집 주인이 선택할 수 없는 기본 품목인 데다가, 이 일은 굉장한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바에 앉은 단골들이 조금이라도 웃긴 말을 하면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크게 웃었다.”

어떤 직업이든 요령이 필요한데, LP 전문 바에서 필요한 요령은 LP를 틀지 않는 일이다. “어떤 날은 CD로 음악을 틀고 있었는데 한 손님이 다가와서 왜 자기 신청곡을 LP로 틀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그런데 턴테이블 위에 미처 치우지 않은 LP 레코드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아, LP네?’ 하더니 매우 만족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지금 나가는 노래가 CD라고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아무 LP 레코드나 하나 꺼내어 얹어놓고 영업시간 내내 턴테이블을 돌렸다.”

술집 주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이 책의 제목이다. 마지막 한 잔 이후에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이름의 한 잔이 남아 있는데, 그마저도 말 그대로 진짜 마지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잔’을 연거푸 장담하는 주당보다 더 무서운 손님들은 따로 있다. “두 테이블이 남아 있는 경우가 가장 몰아내기 어렵다. 서로 저쪽이 일어서면 나도 나가겠다고 상대방 테이블의 눈치를 보며 더욱 대화에 열을 올린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일어나시라.

장르를 특정하기 어려운 이 책이 가장 근접한 장르는 래드릿(lad-lit)이다. 이 장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media2.0, 2007)에 나오는 음반가게와 음반 중독자들을 ‘한 잔만 더 마실게요’에 나오는 LP 바와 거기의 단골로 바꾸면 얼추 분위기가 같아진다. 다른 점이라면 ‘한 잔만 더 마실게요’가 ‘하이 피델리티’보다 더 재미있다는 것. 지은이는 “나는 독자를 웃기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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