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까지 불러 사는 정주화 뚜렷
中 조선족 공동체는 공동화 현상
국내 사회적 융화는 제자리 걸음
“편견·오해 씻고 갈등요인 줄여야”
2013년 고향인 중국 하얼빈을 떠나 취업방문비자(H-2)로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 박모(33)씨는 2년째 중국 음식점에서 주방장 일을 하고 있다. 조선족 밀집 주거지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이제 그의 생활터전이 됐다. 조선족 3세라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한국에 대한 애착은 강했다. “벌이가 중국보다 많아 좋은 것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 공기도 맑고 거리가 깨끗하고.” 박씨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함께 무작정 넘어왔는데 벌써 2년이 지났다. 한국에서 아이까지 생겼으니 비자를 갱신해 이 곳에서 계속 살 생각”이라고 했다.
대림역 부근에서 만난 또 다른 조선족 안모(52ㆍ여)씨도 비자를 갱신하며 10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의 거처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고 있는 반지하방. 직업소개소에서 연결해주는 가정집에서 시간당 9,000원을 받고 하루 걸러 청소하는 게 수입의 전부다. 먹고 사는 게 빠듯하지만 “한국생활에 익숙해져 중국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고 안씨는 말한다. “한국엔 이미 안착한 친척들도 많지만 중국에는 이웃사람들조차 뿔뿔이 흩어졌다. 중국에 있는 아들도 조만간 불러들일 계획이다.”
1992년 한ㆍ중수교 이후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조선족(재중동포) 규모가 23년 만에 80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18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 국내 체류 조선족은 65만명. 2013년까지 40만~50만명에 머물던 조선족은 지난해 59만명으로 급증하더니 올해도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재외동포법에 따라 이미 한국 국적을 회복하거나 취득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국내 체류 조선족은 75만~80만 명. 2010년 중국 인구센서스에서 중국 내 조선족이 183만명으로 집계된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 조선족 3명 중 1명은 한국에 있는 셈이다.
출입국이 자유롭고 체류기간에 사실상 제한이 없어 조선족의 한국행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엔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적어진 반면 중국에 남아있는 가족까지 한국으로 불러 사는 정주(定住)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주동포개발연구원 곽재석 원장은 이와 관련 “한국이나 중국의 대도시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공동체에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며 “돌아가도 맞아줄 이웃이 없고 중국에서 할 일도 마땅치 않아 한국에 계속 머무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한국 내 조선족의 양적 확대와 달리 사회적 융화는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이다. 한국인들의 차별적 정서와 냉대에 상처를 받은 조선족들이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며 끼리끼리 모여 살고, 한국인들은 한국인대로 편견과 오해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곽승지 옌볜과학기술대 교수도 “조선족은 싫든 좋든 이제 이웃으로서 같이 살아야 할 운명공동체”라며 “동질성을 바탕으로 이해를 넓히고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지 않는다면 갈수록 갈등 요인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윤주영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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