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리스트 정치인 33명 올라, 成 리스트도 대상 확대 가능성
당시 금품수수 18명 명단 떠돌아, 成 관련 野 의원들 명단도 유포
YS의 수사 의지 뒤 차남 구속, 정권에 부메랑 된 점도 흡사
‘성완종 리스트’의혹이 18년 전 한보 사태를 닮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는 초기 단계이지만, 사건 성격과 수사결과, 향후 파장을 두고 각종 억측과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여러 면에서 이번 사건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초 대한민국을 뒤흔든 한보 사건의 닮은꼴이라고 보고 있다. 금품공여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제2의 한보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영삼(YS)정부 말기인 1997년 초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한보 사태는 건국 이래 최대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대출 사건으로 꼽힌다. 입을 열지 않아 ‘자물통’‘지퍼’로 불린 정태수(92) 당시 한보그룹 회장이 정ㆍ관계 인사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거세게 일자 국정조사가 이뤄졌고, 정 회장은 여야 거물급 중진 일부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음을 간접 시인했다. 정치권이 발칵 뒤집히자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착수, 대대적인 사정이 시작됐다.
두 사건이 유사한 가장 큰 이유는 금품 수수자의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성완종(64ㆍ사망) 전 경남기업 회장은 친박계 핵심 실세 8명의 금품수수 의혹을 메모지와 마지막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제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보 사태 당시에는 의혹이 커지자 검찰이 33명의 리스트 존재를 전격 공개했다. 심재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수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선별수사’라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정태수 리스트에 담긴 총 숫자를 밝힌다”면서 정치인 33명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명단의 규모는 성완종 리스트가 정태수 리스트에 비해 작지만 향후 검찰 수사과정에서 대폭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많고, 여권에선 야당에도 성 전 회장의 돈이 흘러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도 “리스트에 기초하지만, 그에 국한되는 수사는 아니다”며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리스트와 관련한 출처불명의 ‘괴(怪)문서’가 떠도는 점도 비슷하다. 한보 사태 수사를 앞둔 97년 1월 여의도 정가에선 정 회장한테 금품을 받았다는 18명의 정치인 명단이 나왔고, 2월 초에도 33명의 명단이 돌아다녔다. 이번에 조선일보가 17일 “성 전 회장이 여야 정치인 14명에게 금품을 뿌린 정황이 담긴 장부를 검찰이 포착했다”고 보도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 여의도를 중심으로 야당 정치인 8명의 실명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검찰은 해당 보도에 대해 “아직까지 그런 장부는 전혀 확인된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나, 향후 검찰 수사과정에서 일부는 일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정태수 리스트의 경우 괴문서의 명단과 6,7명이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수사가 정치적 부메랑이 됐다는 점에서도 두 사건은 흡사하다. 97년 김영삼 대통령은 5조원대 부채를 안은 채 부도를 낸 한보그룹의 정치권 로비 의혹이 일자 “이참에 (한보그룹을 비호한) 구태 정치인들을 손보겠다”며 철저한 수사를 지휘했지만, 그 귀결은 차남 현철(56)씨의 구속이었다. 경남기업 수사를 둘러싸고도 처음에는 ‘MB맨을 겨냥한 수사’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수사의 초점은 리스트에 오른 현 정권 실세 8명에 맞춰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1ㆍ2ㆍ3호 대통령비서실장과 현직 총리, 대선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사들로, 만약 금품수수가 사실로 드러나면 현 정권한테는 그야말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법처리 여부와는 별도로,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보 사태 수사에서도 리스트 인사 33명 중 8명만이 기소됐지만, 나머지 인사 상당수도 그 여파로 2000년 총선에서 공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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