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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48)대치동 땅 사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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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48)대치동 땅 사기 사건

입력
2002.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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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여름 안병균(安秉鈞) 회장이 내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제가 대치동에 땅을 샀는데 그 옆 자투리땅 200평을 사십시오.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현재는 평당 400만원이지만 건물만 지으면 땅값이 수십 배 뛸 겁니다. 어떻게 하든 구입하십시오. 제가 돈을 꿔드릴 수도 있습니다.”

안 회장은 앞에서 말했듯이 81년 말 내게 2억4,000만원이 든 사과궤짝을 건네면서 자신의 밤업소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해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내가 출연하면서부터 승승장구한 그가 은혜에 보답하려 한 것이다. 물론 나를 자기 업소에 계속 붙잡아두려는 속셈도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8억원을 주고 그 땅을 샀다. 현재 테헤란로 포스코 건물 뒷편의 땅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땅과 2차선 도로 사이에 150평짜리 부지가 있었는데 땅값이 제대로 뛰려면 그 땅도 사야 했던 것이다.

토지대장을 살펴보니 땅 주인은 대치동 사람이었다. 다행히 당시 ‘초원의 집’ 밴드 마스터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잘됐다 싶어 부랴부랴 밴드 마스터 이종옥(李鍾玉)씨를 찾아갔다.

그는 탤런트 김영애씨의 남편이다. 평소 그 부부와 친하게 지내온 나는 “흥정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땅 주인을 초원의 집으로 불렀다. 젊고 아주 잘 생긴 사람이었다. 그는 명함을 건네면서 자신을 병원장이라고 소개했다.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후 두 달여 동안 온갖 좋은 식당에 우리 세 사람을 데려가 비싼 술을 사주며 정말 끝내주게 대접을 했다.

그러면서 “제가 이주일씨에게 제값을 받을 수는 없고요. 평당 500만원씩 계산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7억5,000만원이었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기쁜 마음으로 계약을 했고 며칠 후에는 중도금 명목으로 5억원을 건넸다.

5억원을 건넨 다음날이었다. 내가 산 200평 땅에 분재를 진열해놓고 물을 뿌리고 있는데 웬 70대 노인이 와서 이러는 것이었다.

“분재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 옆의 땅에도 분재를 놓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 땅도 내가 샀다고 자랑 삼아 이야기했다.

노인이 펄쩍 뛰었다. 알고 보니 그 노인이 진짜 땅 주인이었다.

허우대 멀쩡한 젊은 놈이 내가 150평짜리 옆의 땅을 살 것을 미리 알고 선수를 쳤던 것이다.

3개월 전 의도적으로 김영애 부부에게 접근해 두 사람과 친해진 다음 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를 만난 것이다.

명함에는 토지대장에 있는 것과 똑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다 김영애 부부가 소개한 사람이니 나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이미 그 사기꾼은 홍콩으로 튄 상태였다. 김영애 부부도 망연자실했다.

그 동안 그 놈이 흥청망청 우리에게 접대를 하며 아무리 돈을 썼어도 1억원이다. 4억원을 고스란히 그 놈이 챙긴 셈이다.

홍콩의 한 프로축구팀에서 활약하던 후배에게 소재를 파악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여행사로부터 전갈이 왔는데 이번에는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었다.

그 넓은 중국 땅에서 어떻게 그 놈을 찾나. 5억원은 그때 나에게도 참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2, 3년 전만 해도 10원 때문에 큰 딸 미숙(美淑)을 때린 우리 집이었다. 잠을 못 잤다. 그렇다고 신문에 알릴 수도 없었다.

‘이주일이가 땅 투기하려다 사기를 당했다’고 그럴 것이 아닌가.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선배 코미디언 심철호(沈哲湖ㆍ현 사랑의 전화 회장)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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