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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호 따라 모였다 흩어졌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아요"

입력
2015.10.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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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땐 '혼밥' '혼술' 먹지만 외로우면 SNS 통해 즉석 모임

낯선 사람과 연극·운동 등 즐겨

참여 자유롭고 인간관계 부담 없어 야근·회식 시달리는 젊은층에 각광

서울광장서 사회적 메시지 던지고 해외서도 모여 식사·정보 교환

소셜 모임은 취미를 넘어 운동까지 함께한다. 지난 여름 도심을 달리는 소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강을 질주하고 있다. 프렌트립 제공
소셜 모임은 취미를 넘어 운동까지 함께한다. 지난 여름 도심을 달리는 소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강을 질주하고 있다. 프렌트립 제공

출판사에서 일하는 원현선(30)씨는 종종 서울 대학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그렇다고 현선씨가 ‘사연 많은’ 여성은 아니다. 직장생활에 지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나,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때 ‘혼술’을 할 뿐이다. 한 주에 한두 번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현선씨는 자타공인 혼술족(族) 이다.

현선씨는 또 매주 일요일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번개팅’에 나선다. 지난 달에는 ‘일산 지역 2030세대 모임’에 참여했고 이번 달에는 ‘스윙 댄스 모임’에 나설 계획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취미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참석 이유. 그는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솔직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며 “지난 여름에는 소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가위 한마당 행사에 참여한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생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구입한 식품으로 차례를 지내며 취업난 등 청년 문제를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가위 한마당 행사에 참여한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생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구입한 식품으로 차례를 지내며 취업난 등 청년 문제를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혼술도 하고 소셜 모임도 갖고

현선씨는 소

셜 모임에 익숙한 2030세대의 전형.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하지만, 외롭다고 느낄 땐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모임을 찾아 나선다. 기존의 만남과는 다른 2030세대들의 새로운 만남의 방식이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은 더 이상 새로운 용어가 아닐 만큼 2030세대는 ‘나홀로’ 문화에 익숙하다. 지난해 구인구직 업체인 알바몬이 대학생 6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은 하루 1끼 이상 혼자 밥을 먹는다고 답했다. 현선씨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술을 마시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혼술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서울 대학로나 홍대, 연남동 등에서 나홀로족을 위한 술집이 줄줄이 들어서는 것도 이 같은 유행을 반영한다.

동시에 이들은 SNS를 통해 만남을 이어간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 ‘소셜다이닝’ 문화다. 과거에는 밥을 먹는데 그쳤지만 최근에는 연극, 여행, 운동 등의 취미 활동을 함께 즐기는 ‘소셜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취업 경쟁에 부대끼는 20대, 잦은 야근, 회식에 시달리는 30대들이 비자발적 소셜 모임족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소셜 모임 업체 프렌트립을 통해 서울 우면산 야간 하이킹을 함께한 사람들이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며 밤 공기를 즐기고 있다.
지난 여름 소셜 모임 업체 프렌트립을 통해 서울 우면산 야간 하이킹을 함께한 사람들이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며 밤 공기를 즐기고 있다.

이 때문에 소셜 모임은 2030세대에겐 불가피한 선택이다. 은행원 박선영(가명ㆍ28)씨는 지난 6월부터 매주 두세 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소셜 모임에 나간다. 박씨는 “야근이 잦고 직장인인 친구들과 매번 일정 맞추기도 쉽지 않아 소셜 모임을 애용한다”며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 매일 영화와 연극, 클럽에 갈 사람을 모으는 글이 올라오는데 매번 7~8명은 나올 정도로 인기 있다”고 말했다.

참여가 자유로운 점도 소셜 모임의 장점. 함께 취미를 즐긴다는 점은 동호회와 비슷하지만‘몇 번 이상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이 없고, 인간관계의 부담도 적다. ‘소모임’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연극을 함께 보는 모임에 나가는 김지나(가명ㆍ29)씨는 “단체 관람 티켓을 공동 구매해 저렴하게 연극 볼 수 있다”며 “불필요한 ‘2차’ 문화도 없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진화하는 소셜 모임

심지어 사회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소셜 모임도 인기를 얻고 있다. 2030세대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절망라디오’는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서울 광장에서 갈 곳 없는 청년들을 위한 한가위 ‘한(恨) 마당 캠핑’을 기획했다. 30여명의 청년들이 참석했는데, 대학생 박기홍(29)씨는 “기성세대는 우리들에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 힘든 거라고 하는데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만나 위로를 얻고 행사를 통해 청년 고용ㆍ해고 문제에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 참석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름 휴가로 싱가폴 여행을 다녀온 하연수(가명ㆍ29)씨는 “킹크랩을 먹고 싶은데 혼자 먹기 민망하고 가격도 비싸서 걱정이었다”며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과 먹기로 했는데, 실제로 약속한 7명이 모두 모여 20만원 어치 킹크랩을 먹었다”고 웃었다. 그는 또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부터 출장을 온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싱가폴 여행 정보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셜 모임이 늘어나며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셜모임 업체 ‘집밥’은 ‘고전 책 읽기 모임’, ‘마카롱 만들기’, ‘성교육 워크샵’ 등의 다양한 모임을 진행한다. 사이트 방문자 수도 3년 만에 4,000만명을 돌파했다. 아웃도어 레포츠 모임에 특화된 ‘프렌트립’은 지난해 같은 시기 진행되던 모임이 10개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500여개에 달할 정도다. 프렌트립의 조진환 이사는 “최근 2030세대는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여가를 누구와 어떻게 즐길 지 모르고 있다”며 “프렌트립에서 만난 모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등 일종의 네트워크 형성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셜 모임 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1인 가구가 25%에 달할 만큼 4인 가족 체제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며 “파편화된 사람들이 취미와 기호를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에서 소셜 모임이 공동체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속적 관계라기보다 일시적 접속에 가깝다”며 “다양한 사람을 아는 즐거움이 있지만 서로 가면을 쓰고 만난다면 관계의 성숙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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