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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산사나무

입력
2017.06.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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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은 기념식수를 했다. 이승만은 1958년 방미 때 초대 미 대통령 조지 워싱턴 기념관에 단풍나무를 심었다. 재임 중 몇 차례 방미했던 박정희는 주로 소나무를 식수했다. 전두환도 첫 방미 때 하와이대학 교정에 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는 며칠 뒤 밑둥이 잘려나가는 비운을 맞는다. “5ㆍ18 학살자”라는 재미동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던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첫 행사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가 있는 버지니아주 해병대 박물관에 산사나무를 심었다.

▦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장이무의 영화 ‘산사나무 아래에서’ 초반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항일전쟁 시대에 이 나무는 혁명 선열들의 희생을 목격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은 일본 침략자들에 의해 이 나무 아래서 총살을 당했다. 열사들의 피가 이 나무 아래 땅에 양분을 제공했고 흰 꽃이 피는 이 나무는 열사들의 선혈을 먹고 자라 흰 꽃잎이 점점 붉어지고 결국 완전한 붉은 색을 띤다.”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에 산사나무가 등장하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친근했기 때문이다.

▦ 산사나무는 동서를 막론하고 흔하다. 나무 자체의 적응력이 강하기도 하거니와 꽃과 열매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이 즐겨 심는 까닭이다. 5월에 하얀 꽃을 풍성하게 틔워 ‘메이플라워(may flower)’로도 불린다. 봄을 맞이한 기쁨에 겨워 유럽에서 지내는 메이데이 행사를 장식하는 꽃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사과 모양인 빨간 열매는 약효가 있고 술도 담근다. 가시가 돋아 있는 장미과여서 로마 군인들이 ‘유대의 왕’이라는 예수를 조롱해 씌운 관이 이 나뭇가지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종교적으로도 의미 있는 나무다.

▦ 문 대통령은 산사나무를 심으면서 “별칭이 윈터킹(Winter King)”이라며 “이 나무처럼 한미 동맹은 더욱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해병대가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페이스북에 올리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중 캐서린 에펄린이라는 여성이 이런 글을 남겼다. “겨울왕 산사나무를 고른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어요. 가시는 고통과 용기, 꽃은 새로운 생명의 기쁨, 열매는 깊어가는 우정의 결실. 컴퓨터를 켜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되어 기뻐요.” 한미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더 없이 알맞은 기념식수였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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