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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3 그날... 비극의 역사와 정치, 화해를 되묻다

입력
2016.04.0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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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미국 선댄스영화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다. 자파리필름 제공
2013년 미국 선댄스영화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다. 자파리필름 제공

2016년 4월 3일은 여느 해에 비해 내게 좀더 각별한 날이었다. 1997년 일본어판 완간 후 18년 만인 작년에 한국어로 번역된 김석범 대하소설 ‘화산도(火山島)’ 전 12권을 독파한 후에 맞이한 첫 4ㆍ3이었기 때문이다. 김석범의 필생의 역작 ‘화산도’는 양석일을 위시한 재일 한인 작가뿐만 아니라 유수한 일본인 학자와 지성으로부터 노벨문학상을 충분히 수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본어문학의 금자탑’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 ‘화산도’는 일본어로 씌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국어로 발표된 어떤 작품보다도 제주 4ㆍ3의 슬픈 역사와 참혹한 비극에 대해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한민족문학의 빛나는 성과에 속한다. ‘화산도’만큼 제주 4ㆍ3의 상처와 역사적 기원에 대해 면밀하게 형상화한 작품, 4ㆍ3을 둘러싼 한국인의 삶과 죽음, 항쟁, 망명, 밀항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1988년 ‘화산도’ 1부가 실천문학사에서 간행되었을 때부터 이 작품은 일종의 신화처럼 문인과 연구자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그 신화는 한국어 완역에 의해 내게 비로소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왔다. 작년 10월 ‘화산도’ 한국어판이 발간되자마자 주문하여 거의 밤을 새며 설레는 마음으로 1권을 읽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화산도’를 계속 읽기 시작한다면, 내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일을 기간 내에 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초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내 소설 읽기의 오랜 역사에서 드물게 강렬하고 흡인력 있으며 감동적인 독서에 속했다는 게 그 이유다. 결국 겨울방학까지 기다려 지난 1월 한 달여에 걸쳐 200자 원고지 2만 2,000매에 이르는 ‘화산도’ 12권을 완독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마치 1948년 봄 제주도 관덕정 어디쯤에선가 4ㆍ3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박진감 있는 스토리 전개가 돋보였다. ‘화산도’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4ㆍ3이라는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평면적인 사실을 훌쩍 뛰어넘는다. ‘화산도’는 소설미학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엄연한 걸작이다. 무엇보다 탄탄한 구성과 인물에 대한 장악이 돋보인다. 특히 참으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심리묘사가 탁월하며 캐릭터의 창출에 뛰어나다.

가령 주인공 이방근의 복합적 심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이 소설의 백미다. 그는 한편으로는 허무주의에 마음을 깊이 빼앗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의 언저리에 발을 담그는 문제적 존재다. 한마디로 이방근은 혁명(항쟁)의 동조자이면서도 비판자에 해당한다. ‘화산도’를 온전히 이해하는 첩경은 주인공 이방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화산도’는 작가의 지적인 통제에 의해, 예술성과 사회성이 성공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일 소설가 김석범씨.
재일 소설가 김석범씨.

제주도에서 김석범을 임신한 채 일본으로 밀항한 어머니에 의해 오사카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몇 차례에 걸친 제주도와 서울 체류를 거쳐 1946년 여름 한 달 예정 차 일본으로 밀항한다. 그러나 결국 오랜 세월 동안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 정착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말하자면 그는 4ㆍ3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오로지 증언과 자료, 기억, 상상력에 기대 ‘화산도’를 쓴 것이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망명지인 일본에서 씌어졌기에 ‘화산도’는 비로소 온전히 문학작품으로 발표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일까. 김석범은 ‘화산도’ 한국어판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화산도’를 포함한 김석범 문학은 망명문학의 성격을 띠는 것이며, 내가 조국의 ‘남’이나 ‘북’의 어느 한쪽 땅에서 살았으면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작품들이다. 원한의 땅, 조국 상실, 망국의 유랑민, 디아스포라의 존재, 그 삶의 터인 일본이 아니었으면 ‘화산도’도 탄생하지 못했을 작품이다.”

일본이라는 망명지가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작품 ‘화산도’, 이 얼마나 통렬한 아이러니인가. 1925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 둘에 이른 김석범의 국적은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일종의 무국적 상태에 가깝다. 그는 일본으로 귀화하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지만 여전히 ‘조선적(朝鮮籍)’을 고수하며 고독한 디아스포라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분단 이전의 조국인 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평화 통일을 묵묵히 기다리겠다는 게 그의 오롯한 신념이다.

‘화산도’와의 만남을 통해 내 비평적 시선도 한층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 성숙의 계기는 나만의 것은 아닐 터이다. 이제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에 ‘화산도’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지식사회에 ‘화산도’를 읽는 모임이 꾸준히 존재해왔거니와, 최근에는 서울 부산 제주 등지에서 ‘화산도’를 함께 읽는 시민모임이 생겼다고 들었다.

문학이 역사와 정치를 바꾸지는 못하리라. 대신에 문학은 그 과거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되묻게 만든다. 그 비극의 맥락과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서로를 쉽게 적대시하는 착잡한 시대이다. 이럴수록 ‘화산도’를 읽으며, 4ㆍ3의 역사적 비극과 그 정치적 기원을 면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이 시대 한국문학과 한국사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김석범 작가의 생이 다하기 전에, 그가 남과 북이, 한국과 일본이 기꺼운 화해에 이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마음 깊이 염원해본다. 그 순간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먼저 ‘화산도’를 읽어야 한다.

권성우 문학평론가ㆍ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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