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21> 신앙이 찾아오다

알림

[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21> 신앙이 찾아오다

입력
2011.03.06 05:33
0 0

나는 몇 년 전부터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내가 교회에 나가다니,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내가 교회에 나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니, 아직도 낯선 모습이다.

심장병 수술을 받은 뒤로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신앙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한 절친한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됐다.

사실 내가 신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톨릭 평신도 협회 회장까지 지내셨다.

그래서 1985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故) 김수한 추기경이 직접 장례미사까지 집전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신앙의 영향을 받을 일은 없었다.

생전 처음 교회라는 곳에 갔을 때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특히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통성기도라는 게 아주 이상했다. 기도와 관련된 재미난 기억이 있다. 대표기도가 끝날 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아멘”을 외치는데, 언제 기도가 끝날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나도 서너 번 출석한 뒤로는 ‘타이밍’을 알게 됐지만.

한 번은 윤항기 목사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윤 목사는 가수 윤복희씨의 오빠로, 그 역시 ‘장밋빛 스카프’ 등 숱한 히트곡을 냈던 유명한 가수였다. 윤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신문을 통해 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분의 교회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됐다. 윤항기 목사는 말을 조금 더듬는다. 물론 노래할 때는 가사대로만 부르면 되니까 그럴 일이 전혀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대화할 때는 약간 티가 난다.

하지만 윤 목사는 기도할 때와 설교할 때 전혀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회에 출석한 뒤로 생활도 많이 절제됐다. 어렸을 때 나는 만능 운동선수였다.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은 못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운동선수로 살았고 졸업 후에는 체육교사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늘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야구 해설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고, 연예인 못지않게 방송에 출연했지만 체력에 부담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던 내가 덜컥 입원하고 대수술까지 받았다. 최초의 수술이 최후의 수술이 될 뻔했고, 내 아내는 의사로부터 “당신 남편은 가망이 없습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수술 이후 내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다. 내 몸은 내 것만이 아닌 내 아내의, 내 딸들의 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면 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수술을 받기 전에는 건강을 위해 뭘 한다거나, 안 한다는 게 조금은 창피하고 유치하게 생각됐다. 병원에 가는 것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그러나 심장 수술과 위 종양 제거 수술 후 내 자신이 ‘잠재적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위 수술 후 나는 밥 대신 누룽지를 자주 끓여 먹는다. 밖에서 외식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는 되도록 자극적인 음식을 자제하고 야채를 많이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집 앞에 있는 석촌호수를 산책한다. 맨손체조를 하면서 30~40분 걷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급한 일이 아니면 목적지 2㎞ 전쯤에 내려서 걷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땀을 뻘뻘 흘리는 과격한 운동보다 걷는 게 몸에 좋다.

솔직히 건강관리에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게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술을 마시고 싶다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아무거나 먹을 수 없다는 쾌락적 욕구 때문만은 아니다.

건강에는 자신 있어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이 활동했던 때를 생각하면, 천천히 걷고 천천히 밥 먹고 하는 자잘한 지침들에 매여 있다는 게 약간은 속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십 년을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으니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이도 이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요즘엔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새삼 느낀다. 의사도 내 심장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수술 전에는 체중이 90㎏에 육박했지만 요즘은 74㎏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보다는 확실히 가뿐하다.

100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슬퍼하지 않을 때까지는 살고 싶다. 내 몸은 나 만의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