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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4> 감독, 선수, 심판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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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4> 감독, 선수, 심판의 애환

입력
2011.01.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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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감독들에게 승리는 숙명이요 운명이다. 이기기 위해 살아야 하고,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알고 보면 고달프기 짝이 없는 직업 중 하나가 프로야구 감독이다. 팬들의 환호 속에 뜨거운 박수를 한몸에 받는 승장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하는 패장도 있다. 오늘의 승장이 내일의 패장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한 게 승부의 세계다.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들의 두뇌는 번개처럼 돌아간다. 동시에 망설임 없는 결단도 필요하다. 감독들이 팔짱을 낀 채 편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경기는 1년에 몇 경기 안 된다. 요즘에는 3시간이 넘도록 경기 내내 벤치에 서 있는 감독들이 많다. 앉아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데다 앉아 있을 만큼 심적 여유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명장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감독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경기 중 선수들에게 지시할 때 딱 한 가지만 하라는 것이다. 가령 "이번에는 무조건 변화구만 노려 쳐라" "바깥쪽으로 승부를 걸어라" 등등이다. 복잡한 것을 주문하면 급박한 경기 중에 선수들이 다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것은 선수들만이 아니다. 경기 시간은 3시간 안팎이지만 감독들은 경기 시작 5, 6시간 전에 운동장에 나온다. 방에서 이런저런 기록들을 챙기고, 전날 경기를 분석하고, 당일 경기를 준비하고, 코치들과 미팅하고,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면 금세 4, 5시간이 지나간다.

지금까지 사례로 비춰볼 때 프로야구 감독을 선임하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다. 첫째, 팀원 중 인격, 식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승격시키는 경우. 둘째, 감독을 이미 경험한, 우승 등 실적을 낸 사람. 셋째,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스타성이 뛰어난 사람.

첫 번째의 경우는 구단에 따라 아무래도 자기 팀 출신이 아니면 팀을 잘 운영하지 못하거나, 외부인사를 영입할 경우 부작용이 예상될 때 가능한 발탁이다. 두 번째 경우는 프랜차이즈 출신 중 적임자가 없거나, 적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 팀 성적 부진에 따라 쇄신이 필요할 때 이뤄지는 인사다. 이른바 검증된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인기스타 출신으로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경우다. 국내프로야구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한 경우다. 그러나 '스타=명장'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실패 확률도 적지 않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전인미답의 개인통산 3,000안타를 돌파한 재일동포 장훈씨는 감독의 자격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한 나라의 수상과 같은 대국관(大局觀)을 가질 것. 둘째, 대기업의 사장과 같은 이윤(승리)을 올리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 셋째, 아버지처럼 위엄과 자애가 있을 것.

이러한 조건들은 단순히 야구 감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인 것 같다.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춰진 선수들도 애환이 많다.

몇 해 전이었다. 한 선수가 집으로 찾아왔는데 다짜고짜 작은 소망이 있다고 했다. "자네처럼 잘나가는 선수가 부러울 게 뭐가 있나?" 그러나 그 선수는 주저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가장으로서, 아빠로서는 빵점이죠. 아내나 애들한테 해준 게 없습니다. 아내랑 쇼핑 간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려요."

프로야구 선수는 1년 365일 중 320일은 야구에 매달려야 한다. 정규시즌 6개월은 기본이고 스프링캠프, 마무리캠프, 시범경기 등을 더하면 1년에 11달 이상 야구를 해야 한다. 1년 내내 야구만 해야 하는, 또 야구를 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녀야 하는 야구선수는 현대판 장돌뱅이다.

프로야구는 아마야구와 다르다. 아마야구는 취미생활이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프로야구는 직업이다.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 심판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심판은 판사와 달리 법전을 열어 본 뒤에 판결을 내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모든 것을 즉석에서 판단하고 판정해야 한다.

만일 심판이 느긋하게 판정을 내린다면 곧바로 판정 시비가 인다. 또 모호한 제스처나 발음도 안 된다. 심판들은 비시즌 동안 큰 거울 앞에서 제스처와 함께 목청을 가다듬는 훈련도 한다. 초보 심판들은 일단 선배들의 제스처와 목소리를 따라 하지만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 간다.

정규시즌 때 심판은 보통 4명이 배정된다. 4명 모두 경기 내내 공에서 눈을 뗄 수 없지만 주심은 특히 더하다. 주심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도 마음대로 깜빡일 수 없다. 순식간에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히기 때문이다.

한 심판은 이런 에피소드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경기 후 집에 갔는데 집사汰?어느 팀이 이겼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경기 상황은 1회부터 9회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느 팀이 이겼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니까요."

심판들이 특별히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심판들은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매 순간 집중하다 보니 막상 스코어에는 무관심해질 수 있다. 때문에 홈런이 나와도 얼마나 큰 홈런인지 모를 때가 있다. 심판은 홈런이 나오면 명확하게 시그널을 해야 한다. 내야 심판은 타자 혹은 주자가 베이스를 제대로 밟는지 확인한다. 주심은 홈플레이트를 제대로 밟는지 살펴야 한다. 확인 또 확인. 그게 심판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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